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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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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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름과 밥(rice)


야생화이름 중에는 밥과 관련된 식물이 꽤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을 열거해 보면 아래와 같다.

아팝나무
조팝나무
며느리밥풀 종류
금낭화(며느리밥풀꽃)
박태기나무(밥풀대기나무)
개구리밥
꿩의밥
괭이밥
까치밥나무,
개중대가리(개미밥)
껄껄이풀(고려조밥나물)
꿩의밥(꿩밥)
너도방동사니(까치밥)
산새밥(메추리밥)
쇠뜨기(뱀밥)
연밥매자나무(연밥매자)
연밥갈매나무(연밥갈매)
연밥피나무
오대산새밥
조밥나물
좀장구밤나무(좀장구밥나무)
'밥'이 들어간 식물명은 더 많지만 이명까지 포함해 대략 위의 것들과 위 이름을 포함하는 이름을 가진 것들이다. 잘 살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밥이 붙은 식물명중 많은 것들이 숲이나 들, 하천 등 자연에 사는 동물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개구리, 꿩, 괭이, 까치, 산새, 메추리, 뱀과 연관되어 실제로 혹은 얼핏 그들의 먹이일 것 같은 이름을 가진다. 이외에 금낭화나 며느리밥풀는 야생화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사람과 관계가 되어 있다. 사람과 연관된 이름을 가진 것들일 수록 함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배고픈 시절 흰 쌀밥을 연상된 것들이 많다. 그래서 꽃에는 쌀알모양의 형태를 가지거나 꽃이 흰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동물 이름'이 들어간 것들은 다양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이유야 어떠하든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면 왠지 이름 속의 동물이 그 식물의 씨앗이며 잎을 먹을 것 같다는 인상마저 주어 정감을 주는 것 같다. 뱀밥이나 개구리밥은 이름만 그렇지 해당 동물이 풀을 먹지는 않는다. '뱀밥'은 생식엽이 나올 때 모양이 뱀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고 '개구리밥'은 개구리가 많이 사는 곳에 함께 많이 살고 있으니 엉뚱한 상상을 한 데에서 붙여진 재미난 발상의 결과로 보인다.

이팝나무의 '이팝'은 여러가지 유래가 있다. 첫번째는 꽃이 필때가 절기상 입하(立夏) 에 가깝기 때문에 입하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하얀꽃이 피면 마치 쌀밥이 열린 것 같아 이밥(=쌀밥)나무에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선 건국초 배고픔에 허덕이던 백성들이 조선이 건국되고 나라가 정비되면서 쌀밥을 먹으려면 이(李)씨의 밥을 먹어야 한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팝나무 중에는 오래된 거목들이 있어 천연기념물이나 보호수로 지정된 것이 있다. 흰꽃이 한가득 필 때는 그 모습이 장관인데 그 모습이 쌀밥이 한 가득 달린 것 같은 모양이라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제를 지내기도 한다고 한다. 몇 번 큰 거목에 이팝나무가 한가득 꽃을 피운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장관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밥'은 북한에서는 여전히 쌀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이팝'은 '쌀밥'의 함경도 사투리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라고 한다. 학명으로 Chionanthus의 의미를 풀어보면 chion=눈(雪)+anthos=꽃(花)의 의미인데 이는 눈처럼 흰색의 꽃이 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꽃이 핀 모양이 겨울에 가지에 흰눈이 소복히 쌓여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하기도 한다. 서양에서 색깔과 모양새만 가지고 붙은 이름이라면 국명은 문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이색적인 작명방식이 아닌가 싶다.

조팝나무 역시 이팝나무와 비슷하게 '조+밥'을 의미하며 조밥나물과는 같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공조팝나무 같은 경우는 멀리서 보면 주먹밥이 주렁주렁 열린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잘 붙여진 이름이란 생각을 한다.

 연밥은 자료를 찾아봐도 해당 식물에 왜 연밥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는지 연유를 찾기 어려웠다. 보통 연밥은 연의 씨앗을 의미한다. 밥, 밤 혹은 팝은 공통적으로 씨앗(種子)을 의미한다.

꿩의바람꽃 이야기




2003년 이른 봄. 화야산 계곡에서 이 꿩의바람꽃을 처음 보았다. 이 글과 사진은 그 때 찍고 적었던 글이다. 바람꽃. 보면 볼 수록 아름다운 꽃인 것 같다. 소박하고 청초한 외모에 비해 이름은 바람꽃이라니...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숲해설가협회의 류희창선생님 칼럼을 봤는데 그 중 `꿩의바람꽃의 의미'란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름만으로는 전혀 의미를 생각하기 어려운 참 추상적인 이름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이 사실이든 아니든 너무 재밌고 의미도 가슴에 와 닿아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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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면 들꽃들이 화사하다.
어찌 이리도 오묘한 색을 가지고 있을까...현호색
겨울솜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노루귀
꿩이 바람 필 무렵 피어나는..꿩의바람꽃..

꽃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많은 정보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상님들의 지혜를 담고 있다.
절로 탄성이 나오는 들꽃이름의 의미...

어찌 이리도 이름을 잘 지었을까?

꿩이 바람 피울 때 피는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은 이름에서 주는 미소 외에
우리 조상들 삶이 녹아 들어 있다.

꿩이 바람피우는 것과 사람의 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예전 닭알은 농가에서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계란말이, 계란국, 계란찜, 계란부침....
날계란 하나로 목을 트이던 그 계란..

그렇지만 봄철 계란은 먹을 수 없다.
먹어서는 안된다.
너무 아까워서...
병아리를 깨어 나오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봄철 계란을 먹어버리면 여름철 삼계탕은 없는 것이다.

이때 닭알 대신 다른 알을 구해야 하는데..
바로 꿩알이 대신할 수 있었다.
들을 가다...
꿩의바람꽃이 피어나면..
아하...지금쯤 꿩들이 바람을 피우겠구나..
보름정도 지나면 꿩들이 알을 낳겠구나..

꿩은 일부 다처제.
꿩의바람꽃이 피어날 때 쯤이면
숫꿩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 싸움을 한다.
양지바른 너른공터에 암컷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컷들이 며느리발톱으로 서로를 공격하며 싸우는 모습은 장관이다..

싸움에서 이긴 수컷은 암컷을 모두 차지하고
짝짓기를 한다음
알을 낳아 꿩의 병아리(꺼병이)를 깨어나오게 한다.
바로 꿩의바람꽃이 피어날 때 그들의 행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꿩의 집을 찾을 때는 어떻게 할까?
숫꿩은 봄철 암꿩이 알품기에 들어가면
천적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둥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꿩꿩대며 운다.
그런데 꿩의 소리가 나는 정반대편 그 높이에 가면
암꿩들이 알을 품는 둥지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이치를 알고.
꿩이 소리내는 반대편에가서
꿩알을 찾아 내었다.
꿩은 한마리가 20개에서 30개의 알을 낳는다.
이는 농가에서 계란을 대신할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또한 꿩알을 봄철에 꺼내 먹어야만 되는 이유중 하나는..
꿩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농사 망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꿩의바람꽃이 단순한 들꽃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 시기를 알려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원이었던 것이다..

청계산에 꿩의바람꽃이 아주 많이 피었다.
그 모습 또한 너무 예쁘고 청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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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식물도감(이창복 저)를 보면 Anemone란 속명은 지중해산 아네모네의 희랍명으로 `바람의 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의 정확성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이런 이야기는 많이 만들어질 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바람'의 의미가 여러가지이듯 이야기도 많을 수록 좋은 게 아닐까? 산들거리는 바람의 의미는 야생화의 이미지에 딱 맞고 바람 피우는 시기와 연관짓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더욱 좋다. 벌써 식물을 배우기 시작한지는 꽤 되어가는데 종종 듣거나 알게 되는 식물의 정겨운 이야기들은 어쩜 가까우면서도 먼 생명들을 더욱 더 친근하고 포근하게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새로운 얘기라도 듣는 날이면 그날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듯 하다.

들풀과 어머니 - 익모초, 이질풀


우리의 들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예전 우리의 가난하고 소박했던 삶이 많이 깃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들이 그대로 굳어진 것들도 많을 것이다. 들풀과 관련된 우리네 이야기와 알뜰히 풀을 이용하는 문화를 일컬어 현대에는 풀뿌리문화라고도 부른다. 그중에서 오늘은 익모초와 이질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익모초라는 풀과 이질풀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아이가 배앓이를 할 때 민간요법으로 이 풀들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먹여 배아픔을 멎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녀석은 약이 귀할 때 엄마를 도와주는 풀이라고 해서 익모초(더할익, 어미모, 풀초 - 웹폰트가 한자를 지원 안 해주네요 ^^)라고 했으며 다른 한 풀은 파리가 앉은 음식물을 먹거나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 오염된 음식을 먹었을 때 설사를 계속하는 이질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이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풀들을 야외에서 만날때마다 그 푸근하면서 모정이 느껴지는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풀을 매개로 이심전심된 게 아닌가 싶다.

[선이질풀 2005.7.20. 예봉산]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국어책에 약손이라는 짧은 수필이 있었던 것 같다. 아픈 아이의 배를 문질러주면서 내 손은 약손이다. 얼른 나아라~ 얼른 나아라하면 신기하게도 아픈 배가 스르르 나았었다는 저자의 회고가 담긴 그런 내용이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난 약이란 것을 참 많이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약은 되도록 먹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돌이켜 보면 내게도 어머니의 그런 따뜻한 약손의 기억이 남아있다. 커서 말이다. 내가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면 무턱대로 약을 먹이는 것보다는 여러가지 응급처치정도는 할 수 있도록 공부 좀 해야겠다. 아버지 손은 약손이다 하며 배를 문질러 주는 것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약에 대한 기억보다는 모정이나 부정을 기억하게 해주는 건 어떨지 모르겠다.

야생화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우리나라의 이야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었던 것 같다. 며느리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사랑과 이별, 슬픔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점이다. 꽃에 대한 이야기에 여성이 많은 것은 꽃과 열매의 자연적 기능과 상징적인 의미가 통해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살림살이를 주로 했던 여성들에게 들풀과의 관계는 먹거리와 연결되거나 약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나무를 지거나 힘이 들어가는 작업에 관련된 생물에 대해서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역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에서 묻어나는 문화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풀문화, 꽃문화 우리가 가진 이런 문화유산은 참으로 소중하다.

외국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그들의 영웅, 문화, 자원이 그 안에서 느껴질 때마다 생물을 공부한 나로선 아직 우리에게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시선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재천교수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학문간의 통섭과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비단 학문간이 아닌 영역을 넘어선 대화와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전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만남 그리고 열린 마음, 서로에 대한 존중 이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시험이 아닐까 싶다.

남사스런 야생화 이름.. 불알, 개불알


국가표준식물목록을 참고해보면 국내의 식물이름에는 아래와 같은 이름에서 '불알', '요강', '복주머니'이란 단어가 나타난다.
한눈에도 남사스러운 표현임에는 틀림이 없다. 왜 하필 '불알'이란 말인가? 분명 '불알'이란 의미하나만 보면 은밀한 부위이며 쉽게 입에서 꺼내기 어려운 말이지만 '불알친구'라는 말은 많이 쓰이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는 입을 통해 많이 회자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야생화의 경우 위의 '불알, 요강, 복주머니'와 같은 표현은 비슷한 형태를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며 식물의 일부분의 형태와 관련이 있고 보통 둥근모양을 의미한다. '불알'의 경우 2개가 짝을 지은 형태를 나타내는 경우 쓰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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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요강꽃 (난초과) - 광능요강꽃, 광릉복주머니란, 광릉요강, 큰복주머니
노랑복주머니란 (난초과) - 노랑개불알꽃, 누른요강꽃, 큰개불알꽃
복주머니란 (난초과) - 개불알꽃, 복주머니, 복주머니꽃, 요강꽃
털복주머니란 (난초과) - 조선요강꽃, 털개불알꽃

개불알풀 (현삼과) - 개불꽃
눈개불알풀 (현삼과)
선개불알풀 (현삼과) - 개불알꽃, 선조롱박풀
소경불알 (초롱꽃과) - 소경불알더덕, 알더덕, 만삼아재비
애기더덕 (초롱꽃과) - 애기소경불알
큰개불알풀 (현삼과) - 큰개불알꽃
털복주머니란 (난초과) - 털개불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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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삼과, 난초과, 초롱꽃과에서 나타나는데 모두 형태에서 '불알'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불알친구는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거리낌 없이 막역한 사이를 이르는 말이지만 식물의 이름 속에서 '불알'은 단순히 식물의 일부분(열매, 꽃 등)이 모양상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 많다.

큰개불알풀

선개불알풀

개불알풀 열매 (참고 : http://blog.empas.com/lhg289/22146963)

처음 개불알풀과 같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풀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너무 성의없게 지은 이름이 아니냐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식물을 만나고 열매나 꽃의 생김새를 관찰하면서 나도 모르게 동감하고 만 것이 바로 이 개불알풀이란 풀이다. 열매가 들어있는 부분 두쪽이 불알마냥 붙어있는데 열매가 여물면서 부풀어오르면 여지없이 꼭 그것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불알'이 쓰인 형태를 보면 대부분이 '불알'의 형태가 아닌 '개불알'의 형태로 쓰여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개-'는 '가짜-'나 '거짓'의 의미가 아닌 개(犬, dog)의 의미를 가진다. 자주 접하는 동물중 하나인 개의 불알을 다룬 이유는 불알의 형태를 관찰하기가 쉬운 편이며 비호감을 덜하면서도 형태상 특징을 잘 살리고자 한 것 같다.

분명 '불알'이란 단어는 식물의 일부분을 설명하는 단어로는 그리 적당한 표현은 아니나 자세한 특징을 살펴보면 나쁜 표현만도 아니다. 그러나 하필 왜 그곳이란 말인가. 이런 이유로 난초과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름다운 꽃을 가진 난초 이름에 불알이란 단어가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복주머니' 혹은 요강꽃으로 대부분 교체되고 말았다.

그 결과 소경불알을 제외하고는 불알은 '개불알'의 형태로 현삼과 식물의 열매특징을 나타내는데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에도 이런 경향은 잘 반영되어 있다.

'개불알'은 대부분 형태와 관련이 깊은데 현삼과의 개불알풀 종류는 열매의 모양을 딴 경우이며 난초과의 경우에는 꽃의 형태를 딴 경우이다. 이 때문에 현삼과 식물은 개불알풀로 불리며 난초과 식물에는 개불알꽃으로 구분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개불알'이 들어간 난초과 식물의 경우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큰 꽃이 피는데 애호가들에게 하필 '개불알'로 비유되는 꽃은 불만사항이었나보다. 요강꽃내지는 복주머니란으로 변모된 사례가 그 한 예이다. 이에 비해 현삼과 식물의 꽃은 눈에 잘 띠지 않을만큼 작으며 '개불알'의 의미는 잘 눈에도 뜨이지 않는 열매의 모양을 잘 반영한 것이므로 은밀한 부분에 있는 불알과 속성이며 형태면에서 유사점이 많아 '개불알'이란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초롱꽃과의 소경불알 종류에서는 '개불알'의 형태가 아닌 '불알'이 직접 사용되고 있으며 뿌리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길쭉한 모양이 아닌 알모양을 하고 있는 특징에서 비롯된 것으로 둥근모양과 땅 속에 숨겨져 평소에는 안보인다는 특징이 '불알'의 여러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다. 정리하면 현삼과의 경우 열매의 모양, 난초과의 경우 꽃의 모양, 초롱꽃과의 경우 뿌리의 모양이 '불알'의 형태적인 특징 및 속성(은밀한 곳에 위치함)과 관련이 있다.

이름이란 건 변하기 마련이다.
개불알꽃이 이쁘고 복스러운 복주머니란으로 개명한 것이나 개불알풀이 그 이름을 아직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추천명으로 올리고 있지만 식물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에게 봄까치꽃이라는 이쁜 이름이 더 환영받는 것처럼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의 더욱 많은 관심을 받을 수록 애칭이나 이름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것 같다. 이명이 많아 혼란스러울수도 있지만 이명이 많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으며 그만큼 관심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쁜이름이 좋기도 하나 난 개불알풀 정도는 재미있게 불러주고 싶다. 특징적인 열매의 형태가 잘 반영된 이름이기 때문이고 그걸 떠나서도 왠지 옛날 사람들의 장난섞인 별명붙이기 같은 이름이 이유없이 맘에 들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식물명의 '노루'의 의미


식물의 이름 중에는 노루를 비롯해 동물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다룰 내용은 바로 '노루'가 들어간 이름에 대한 것이다.
국가생물종정보시스템의 식물도감에서 '노루'로 검색을 해보면 여러종의 식물이름이 검색되는데 크게 나누면 미나리아재비과(노루귀, 노루삼) 노루발과(노루발), 범의귀과(노루오줌),산형과(참나물(산노루참나물), 노루참나물), 콩과(노루목등갈퀴)로 구분할 수 있다.



노루귀와 노루오줌, 노루발에 대해서는 종종 유래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외에 노루목이나 노루삼에 대한 것은 이글을 쓰면서 새로 알게 된 것들이다. 일단 참고한 글중 발췌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았다.

아래는 임소영님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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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귀

입춘에 우수까지 지나니 방송이나 잡지에서 봄을 알리는 들꽃 사진을 많이 보여준다. 산과 들에 사진 찍으러 가도 실제로는 찾기 어렵다고 하는데, 눈속에서도 피어 있는 풀꽃을 찾아내고는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서 그 새롭고 소중함을 전하는 듯하다. 산수유·매화·개나리·진달래·벚꽃이 차례로 온 나라를 덮기 전에 봄의 전령으로 수줍게 피는 바람꽃·복수초·현호색·노루귀·제비꽃 …. 이 가운데 노루귀는 신문·방송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

노루가 예전에는 아주 친근한 동물이어서 그런지, 땅이름·연장이름·속담들에도 자주 등장한다. 풀꽃이름에는 더 흔하다.

‘노루귀’는 노루귀 모양의 잎 뒷면에 털이 보송보송 길게 덮은 모습이 노루귀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조금 작은 노루귀는 ‘새끼노루귀’라 부른다.

‘노루발’은 잎맥 모양이나 하얀 눈 위에 나 있는 모습이 노루 발자국처럼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작은 품종은 ‘새끼노루발’이다. ‘노루삼’은 홍갈색 수염뿌리가 나고 약효가 많은 까닭에, ‘노루오줌’은 노루가 물 마시고 오줌 누는 물가에 많고, 노루오줌 냄새가 난대서 붙은 이름이다. ‘노루참나물’은 참나물과 비슷하나 전체에 털이 나서, ‘노루궁뎅이버섯’(노루꼬댕이버섯)은 노루꼬리 모양의 털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노루귀든 노루궁뎅이든 지금은 잘 볼 수 없으니, 노루가 뛰놀고 노루귀가 피었던 산골의 봄을 머릿속으로나 상상해 본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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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식물명의_어휘론적_연구(노재민)의 대학원 학위논문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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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풀'의 경우도 노루의 생김새와 이 풀이 직접적으로 닮았다기보다는 이 풀이 자라는 산지대가 노루의 서식지와 비슷하고, 이러한 공간에서 자주 발견되는 작은 풀 종류이기 때문에 그 공간적인 인접성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노루’가 구성요소로 참여한 ‘노루삼’, ‘노루오줌’ 등은 그 사전기술에서 ‘산에 자란다’와 같은 부분이 공통된다. ‘노루’가 식물명 구성요소로 참여할 때는 해당 식물인 노루가 잘 다닐만한 산속에 주로 서식하는 까닭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노루목’이 ‘노루가 자주 지나 다니는 길목’을 가리키는 말임을 참고할 수 있다. 한편, ‘노루귀’의 경우는 그 생성 과정이 다른 것인데, 이 경우는 그 잎의 모양에 털이 많고 노루의 귀 모양과 유사한 점이 포착되므로 그 유사한 속성을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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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노루귀는 노루의 귀모양을 한 잎의 모양과 부드럽게 난 털의 모양이 노루의 그것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즉 노루의 특정부분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그럼 강아지도 있고 친근한 동물이 더 있었을텐데 왜 하필 노루인가? 당시에는 여러 야생동물이 산에서 살았고 그 중에서도 산에 서식하고 가장 정감있는 동물이 노루였던 모양이다.

노루발은 겨울산행이나 초봄의 산행시 쉽게 알 수 있다. 노루발은 겨울에도 초록색의 잎을 그대로 유지한채 보내는데 노루발이 자라는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온도가 높은지 눈이 더 빨리 녹아 얼핏보면 동물의 발자국같은 모양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 식물을 배울 때는 노루발을 잘 관찰해보면 잎이 꼭 밝힌 모양으로 약간 찌부러진 모양인데 노루가 밟은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노루오줌은 뿌리부분에서 노루오줌냄새가 난다고 하여 붙은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 임소영님의 글처럼 노루가 물 마시고 오줌 누는 물가에 많다는 것은 구체적인 장소라기 보다 그냥 산중에 많이 핀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노루삼의 경우 이름에 대한 유래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삼은 뿌리의 맛이나 색때문에 붙었다고 하더라도 굳이 산에 자란다는 의미로 노루삼이라고 붙인 것은 선뜻 이해가 안된다. 인삼이 뿌리모양이 사람의 모양과 비슷해 붙은 이름이고 산삼의 경우 산에서 자라는 삼이라는 의미라면 노루삼은 삼같이 생겼으나 산에서는 노루나 먹을 법한 가짜삼이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실제로 뿌리라고 부르는 것은 줄기부분(지하경 중 근경의 형태를 띰)으로 굵고 홍갈색이며 수염뿌리가 있으며 약효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삼과는 다르지만 산에자라는 삼에 버금가는 약효를 가진 약초라는 의미에서 붙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노루삼은 미나리아재비과이고 인삼이나 산삼은 두릅나무과다.

식물명의_어휘론적_연구(노재민)을 통해 노루목이 노루의 목이 아닌 보통 '목이 좋다'라고 표현할 때 위치가 좋다는 의미의 '목'의 의미를 가진다면 노루목 역시 노루가 자주 출몰할 만한 곳에 산다는 의미로 보인다. 참나물의 이명인 '산노루참나물' 역시 단순히 '산에서 자라는'의 의미로 보면 될 것 같다.



식물명은 아니지만 '노루궁뎅이'라는 이름의 버섯이 있다. 노루의 엉덩이 부분은 유독 하얀 털로 뒤덮여 있어 멀리서도 뒤태만으로도 구분이 가능한데 이 노루궁뎅이를 쏙 빼닮은 버섯의 형태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노루털버섯이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보통 버섯모양이지만 갓의 아랫면의 자실층에 노루의 털같은 짧고 갈색빛을 띤 침상돌기가 잘 발달해서 지어진 이름으로 보인다.



한가지 더 재봉일을 평생 해오신 나의 아버지와 오랫동안 함께 해온 것이 하나있는데 바로 미싱이다. 미싱일을 하시면서 예전부터 노루발이라는 이름을 들어왔는데 어렸을 때는 잘 몰랐다가 커서야 그게 노루발과 꼭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물이름은 아니지만 식물명과 같으면서도 식물은 밟힌모양, 잎맥의 모양, 노루발자국 모양을 비유한 것이라면 미싱에서 쓰는 노루발이란 녀석은 의미그대로 노루의 발 중에서도 특히 발굽부분을 꼭 빼닮아 붙은 모양인 게 재미있어서 다루어 보았다.

옛날 사람들은 산은 노루가 많은 곳으로 생각했을 만큼 노루는 흔한 동물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산에서 대형 야생동물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한번은 산에서 갔다가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장소에서 야생화를 촬영하고 있다가 등뒤에서 무언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돌아보니 5m정도 거리에서 고라니 한마리가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야외에서 그렇게 가까이서 커다란 야생동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놀라서 카메라로 찍을 생각도 못하고 지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만 한 적이 있다. 산을 오르면 식물이름 속에서 노루를 발견하기 보다는 멀리서라도 노루궁뎅이정도라도 감상할 수 있는 때가 언젠가는 다시 오기를 한번 소망해보며 글을 마친다.

나무이름의 유래


나무이름의 유래 98년 <산림>지 9월호 게재
경북대 박상진

우리 나라에는 약 1천 여종의 나무가 있고 남한만 하여도 약 6.7백 여종이 자라고 있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나무 이름에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우선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생소함에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처음 나무의 이름을 붙일 때는 그 나무가 갖는 독특한 특성에 근거를 두었으므로 나무마다 어떤 의미를 가진 연유가 있으나 우리가 찾지 못할 따름이다. 이름을 붙일 당시는 짧게는 수 백년, 길게는 수 천년 전이어서 지금은 그 의미를 새겨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으나 나무의 특성과 연관지어 추정해 보면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수종도 상당수 있다.
나무의 바깥 모양, 쓰임새, 수피, 잎, 꽃, 열매, 가시 등으로 나누어 나무이름의 연유를 찾을 수 있는 나무의 특징과 이름과의 상관관계를 구명해 보고자 하였다. <나무백과>, <우리나무백가지>, <한국수목도감>, <수우 이창복교수의 발자취> 등에서 이미 밝혀진 수종명의 유래를 소개하고 필자가 나름대로 구명한 내용을 추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1. 나무의 모양

나뭇가지가 돌려나기하고 거의 직각으로 퍼져 층 층을 이룬다하여 층층나무, 나뭇가지가 정확하게 3개씩 갈라지는 삼지(三枝)닥나무, 멍석을 깔아놓은 것처럼 땅에 바짝 붙어 자라는 멍석딸기, 줄줄이 이어 자라는 줄딸기, 껍질도 속도 하얗고 길게 늘어져서 국수를 연상한다하여 국수나무, 가지가 꼬불꼬불하여 용트림을 하는 용(龍)버들, 가지가 길게 늘어지는 버들이란 뜻의 수양(垂楊)버들, 미국에서 들어온 버들 혹은 아름다운 버들이란 의미로 미류(美柳)나무, 빗자루를 만들고 약용으로 쓰이는 초본의 비싸리 보다 작고 땅에 붙어 자란다는 땅비싸리를 예로 들 수 있다.

또 가지가 부드럽다는 뜻의 부들나무가 버들이 된 것으로 보이며, 싸리가 아니나 광대처럼 싸리 흉내를 낸 광대싸리, 중국의 위성에 많이 심었고 모양이 버드나무처럼 늘어지는 위성류(渭城柳)가 있다. 모양이 웅장하고 크다는 뜻으로 왕(王)이란 접두어가 붙은 이름이 많은데 왕버들, 왕자귀나무, 왕머루, 왕팽나무, 왕대 등의 예가 있고, 나무가 누워있다는 뜻으로는 눈잣나무, 눈향나무, 눈측백나무 등이 있다.

2. 나무의 쓰임새

나무 자체의 쓰임새로 이름이 붙여진 것은 대팻집나무, 참빗의 살을 만든 참빗살나무, 고기잡이 도구로서 작살에 쓰인 작살나무, 윷을 만들기에 적합한 윤노리나무, 키나 고리괘짝을 만든 키버들과 고리버들, 조리를 만드는데 사용한 조릿대 등이 있다. 노린재나무는 전통 염색에 매염제로 널리 쓰인 황회를 만들던 나무인데, 잿물이 약간 누런빛을 띠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나무껍질의 용도로 붙여진 이름을 보면 껍질을 벗겨 삿자리 등으로 이용한 피(皮)나무, 사위가 짐을 질 때 힘을 덜 수 있도록 연약한 줄기를 가진 사위질빵이란 이름이 있으며 이정표로 쓰인 나무에는 5리 및 10리마다 심었다는 오리나무와 시무나무가 있다.

또 칠에 쓰인 나무로서는 옻칠에 쓰인 옻나무, 황금빛을 낼 수 있는 황칠(黃漆)에 쓰인 황칠나무를 들 수 있다. 기타 잎으로 떡을 갈아 싸는 떡갈나무, 환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환자(無患子)나무, 가지가 낭창낭창하여 말채찍으로 쓰였다는 말채나무의 예를 들 수 있다.


뽕나무와 쓰임새는 비슷하나 훨씬 더 단단하다는 의미로 굳이뽕나무가 구지뽕나무로 되고, 다시 된 발음으로 변하여 꾸지뽕나무가 되었다.
옛날 나무꾼들이 숲 속에서 짚신 바닥이 헤지면 신갈나무 잎을 깔았다하여 '신을 간다' 란 뜻으로 신갈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3. 수피의 형태

수피의 색깔로 붙여진 이름에는 거의 흰 빛의 얼룩얼룩한 수피를 갖는 백송(白松), 검은빛 수피를 가진 흑피목(黑皮木)에서 검은 피나무로 되고 다시 변하여 된 가문비나무, 회갈색의 흰 수피인 분피(粉皮)나무가 변한 분비나무, 검은 소나무라는 뜻의 흑송(黑松)이 검솔을 거쳐 곰솔, 붉은 수피로 대표되는 주목(朱木), 내수피가 짙은 황색을 나타내는 황벽(黃蘗)나무, 은빛 백양나무라는 뜻의 은백양(銀白楊) 등이 있다. 노각나무는 사슴뿔처럼 보드랍고 황금빛을 가진 아름다운 수피라는 뜻에서 녹각(鹿角)나무라고 하다가 발음이 쉬운 노각나무로 되었다.
또 벽오동(碧梧桐)은 수피가 푸른색이라서 붙여진 이름인데 한자로는 청동목(靑桐木)이며 북한에서는 청오동이라 한다. 피부병의 일종인 버짐이 핀 것처럼 수피가 생겼다하여 버즘나무, 수피의 모양새가 독특하여 붙여진 이름에는 줄기에 화살 날개모양의 코르크질 날개가 달리는 화살나무, 코르크가 굵은 혹처럼 발달한 혹느릅나무, 두꺼운 수피 때문에 세로로 깊은 골이 파진다하여 골참나무로 부르다가 변한 굴참나무가 있다.

4. 잎의 특징

잎 모양의 특징에 따라 붙여진 이름은 박쥐가 날개를 폈을 때 모양과 같다하여 박쥐나무, 잎이 갈라지는 모양이 손가락 8개달린 손바닥 같은 팔손이, 7개로 잎이 갈라지는 칠엽수(七葉樹), 잎이 5개로 각 각 갈라지고 껍질을 약제로 쓴다는 뜻으로 오가피(五加皮)가 변한 오갈피나무, 가위로 잘라 놓은 것처럼 잎이 깊이 파진 가새뽕나무, 고추 잎을 닮은 고추나무, 작은 깻잎 모양을 한 좀깨잎나무, 사방오리보다 잎이 작고 잎맥수가 많은 좀사방오리, 잎 끝이 우묵하게 들어갔다 하여 우묵사스레피나무, 침엽이 좌우로 줄처럼 달린 모양이 한자의 아닐 비(非)자를 닮았다하여 비자(榧子)나무가 있다. 잎이 떨어지는 모양으로 본 이름은 속생하고 있는 잎이 1개씩 떨어지는 낙엽송(落葉松), 잎은 물론 작은 가지의 일부가 깃처럼 떨어지는 낙우송(落羽松)을 들 수 있다.
그 외 단풍이 특히 붉게 든다하여 붉나무, 밤에는 복엽으로 붙은 작은 잎이 서로 닫히는 모양이 잠자는데 귀신 같다하여 자귀나무, 잎 뒷면이 은빛인 단풍나무라는 의미로 은단풍(銀丹楓), 참나무 종류 중에는 잎이 가장 작다는 졸참나무, 반대로 잎의 크기가 다른 나무보다 훨씬크다하여 태산목(泰山木), 사철 푸르다는 사철나무, 잎자루가 길어 약간의 바람에도 잎이 벌벌 떤다는 사시나무, 덩굴의 뻗음이 튼튼하여 미역 고갱이처럼 생겼다하여 미역줄나무 등이 있다. 또 싹이 나오는 모양이 말의 이빨처럼 튼튼하게 생겼다하여 마아목(馬牙木)이 변한 마가목, 마찬가지로 순이 나오는 모양이 붓처럼 생긴 붓순나무, 겨울눈의 모양이 호랑이 눈을 닮았다 하여 호랑버들, 마찬가지로 겨울눈 모양이 삐죽해서 빗죽이나무라 부른다고 한다.

5. 꽃 모양

꽃이 피었을 때의 생김새에 따라 붙인 이름이 많다. 이팝나무는 꽃이 만개 할 때는 흰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마치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인데 조선시대 쌀밥을 먹기 위하여 이씨의 밥을 먹어야 한다는 뜻에서 이밥나무가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

비슷한 유래의 이름으로는 잔잔한 흰 꽃이 조밥을 연상시키는 조밥나무에서 조팝나무가 된 예가 있다. 또 새하얀 꽃핀 모양을 밤에 보면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야광(夜光)나무가 있다. 한편 꽃모양이 밥을 틔겨둔 것 같다하여 밥틔기가 변한 박태기나무가 있다.

기타 튤립 꽃과 비슷한 꽃이 나무에 달린다하여 튤립나무,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 달린다는 뜻의 수구화(繡毬花)가 변한 수국, 수수꽃을 닮은 꽃이 핀다하여 수수꽃다리, 참꽃나무 비슷한 꽃이 달리나 상록으로 겨울을 나므로 참꽃나무겨우살이, 연꽃모양의 꽃이 피는 나무란 뜻의 목련(木蓮), 함박꽃 모양의 꽃이 피는 함박꽃나무, 겨울에도 꽃이 피는 겨울나무란 뜻의 동백(冬柏), 나무모양은 버드나무 비슷하나 복사나무를 닮은 꽃이 핀다하여 유도화(柳桃花, 협죽도)가 있다. 팥꽃나무와 분꽃나무도 비슷한 유래의 이름이며 꽃 모양이 병과 같다하여 병꽃나무란 이름도 있다.

꽃의 색깔로 붙인 이름에는 옥매(玉梅), 홍매(紅梅), 황매화(黃梅花)가 있으며 하얀 꽃이 스님의 머리 같다 하여 불두화(佛頭花)란 이름도 이채롭다. 오랫동안 계속하여 무진장하게 꽃이 핀다는 무궁화(無窮花)가 있으며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이란 뜻인데 꽃이 필 때 꽃받침과 꽃자루가 긴 타원형 주머니처럼 비대해 지면서 수많은 작은 꽃들이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꼭대기만 조금 열려있어서 꽃을 잘 볼 수 없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었다.

6. 열매 특징

열매의 바깥 모양에서 유래된 이름이 많으며 먹는 열매로서는 살구모양인데 은빛이라는 뜻의 은행(銀杏)나무, 참외모양의 열매가 나무에 달린다 하여 목과(木瓜)나무가 변한 모과나무, 주염 열매가 달리는 주엽나무, 신선의 과일이라는 천선과(天仙果)나무, 먹기만 하면 요강이 뒤집어질 정도로 정력이 세어진다는 복분자(覆盆子)딸기가 있다.


독특한 열매모양을 갖는 나무로서는 까마귀가 베기에 적당한 작은 베개 모양을 한 까마귀베개, 열매가 전통악기인 장구모양을 한다하여 장구밥나무, 4개로 갈라진 열매의 끝이 선풍기 날개처럼 휜 나래회나무, 열매가 모여 족제비 꼬리모양을 한 족제비싸리, 산 속의 큰 나무에 딸기 모양의 열매가 달리는 산딸나무, 열매의 모양이 마치 부채를 펴논 것처럼 아름답게 생겼다는 뜻으로 미선(美扇)나무, 흔히 두개씩 마주보기로 달리는 모양이 개불알을 닮았다하여 괴불나무, 열매가 둥글고 반질반질하여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중대가리나무를 들 수 있다. 열매가 쥐똥 같다는 쥐똥나무는 북한에서는 검정알나무라 하여 우리보다 훨씬 아름다운 이름을 쓴다.

열매의 용도에 따라 붙여진 이름에는 모든 병에 다 효력이 있는 만병통치약이란 뜻의 만병초(萬病草), 단단하고 새까만 열매가 달려 염주를 만들 수 있는 염주(念珠)나무, 열매에서 머릿기름을 짜내는 동백나무에 비하여 열매가 작다는 뜻으로 쪽동백나무, 마찬가지로 기름을 짜는 열매가 달리고 오동나무 비슷하다는 유동( 油桐)이 있다. 또 열매가 작은 아기배 모양이라서 아기배나무가 변한 아그배나무, 열매가 말발굽 모양을 한다는 말발도리가 있다.

7. 가시의 특징

가시의 특징으로 붙여진 이름에는 실거리나무가 대표적이다. 즉 가시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휘어있어 실이 잘 걸리는 나무란 의미이며 일명 총각귀신나무라고도 한다. 기타 가시모양이 엄하게 생겼다는 음(엄嚴)나무, 가시가 굵고 튼튼하여 호랑이 발톱 같다하여 호자(虎刺)나무, 탁엽이 변하여 매발톱같은 날카로운 가시가 3개씩 달린 매발톱나무, 잎의 가장자리가 단단한 침으로 변하여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등긁기로 쓴다는 호랑가시나무, 가시에 잘 찔린다하여 찔레나무, 가시가 용의 발톱 같다하여 용가시나무, 줄기에 큰 가시가 발달하는 조각자(?角刺)나무가 있으며, 가시가 접두어로 붙은 나무 이름에는 가시오갈피나무, 가시딸기 등이 있다.

8. 냄새 및 맛

잎이나 가지를 꺾으면 생강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잎에서 역한 누린내가 나는 누리장나무, 지독히 쓴맛인 소태 맛이 나는 소태나무, 나무에서 향기가 나는 향(香)나무, 익는 열매에서 신맛, 단맛, 쓴맛, 짠맛, 매운맛의 다섯 가지 맛이 섞여 있다는 의미의 오미자(五味子), 열매에서 달다는 뜻의 다래, 꽃향기를 약제로 쓰는 정향(丁香)나무, 상스러운 향기가 난다는 서향(瑞香), 향기가 백리에 이른다는 백리향(百里香) 등이 있다.

또 돈나무는 열매가 겨우 내내 끈적끈적하고 달큼한 액체를 분비하므로 각종 곤충과 파리 떼가 날아와서 지저분하기 때문에 똥나무가 변하여 돈나무가 되었다 한다. 기타 잔가지를 꺾어 물 속에 넣으면 푸른 물이 울어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 물푸레나무가 있다.



9. 생태 및 기타

살아가는 생태적인 특성에 따라 낙엽이 저버린 기주(寄主)나무에서 겨울을 상록으로 나므로 겨울살이가 변한 겨우살이, 혹은 겨우겨우 살아간다는 뜻의 겨우살이, 반상록으로 겨울도 참고 잘 견딘다는 뜻의 인동(忍冬)덩굴, 주로 개울가에 자란다는 갯버들, 담장의 덩굴이란 의미의 담쟁이덩굴, 바위가 많은 지역에 자라는 바위말발도리, 바닷가에 자라는 소나무란 뜻의 해송(海松) 등이 있다. 또 나무의 색이 붉은 가시나무란 뜻의 붉가시나무도 있다.

나무가 자라는 곳이 습기가 많거나 나무의 생재함수율이 높아서 붙은 이름에는 물박달나무, 물황철나무, 물오리나무, 물참나무, 물갬나무 등 앞에 물자가 있는 이름이다. 유사한 나무와 구별하기 위하여 참자가 붙은 참가시나무, 참개암나무, 참느릅나무, 참조팝나무, 참싸리 등이 있다. 또 깊은 산에 자란다는 산딸기나무, 산벚나무, 산뽕나무, 산앵도, 산조팝나무, 산팽나무, 묏대추, 두메오리나무 등의 예가 있다.

열매를 팽총의 탄환으로 사용할 때 날아가는 소리가 팽~한다하여 팽나무, 잎이 두꺼워 불 속에 던져 넣으면 "꽝꽝"하는 소리가 나는 꽝꽝나무, 수피를 태울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가 나는 자작나무, 분지를 때 "딱"하고 분질러지는 닥나무, 마찬가지로 분지르면 "동강동강"하고 분질러지는 데서 동강나무가 변하여 된 댕강나무가 있다.

10. 한자 이름

오랑캐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처럼 생긴 열매라는 호도(胡桃)나무, 뼈를 책임진다는 의미가 있고 한약제로 쓰이는 골담초(骨擔草), 가서목(哥舒木)에서 가서나무를 거쳐 변한 가시나무, 노가자목(老柯子木)에서 변한 노간주나무, 대조목(大棗木)에서 대조나무를 거쳐 대추나무, 구룡목(九龍木)에서 변한 귀룽나무, 서목(西木)에서 변한 서나무(서어나무), 마찬가지로 소서목(小西木)에서 변한 소사나무, 수액을 채취하여 마시면 뼈에 좋다는 뜻의 골리수(骨利樹)에서 변한 고로쇠나무, 개 뼉다귀나무란 뜻의 구골(狗骨)나무, 겨울에 반상록으로 지나나 대체로 살아서 겨울을 난다는 생동목(生冬木)에서 생동나무를 거쳐 변화된 상동나무, 목단(木丹)이 변한 모란, 척촉이 변한 철쭉 등이 있다.

그 외 가짜중이란 뜻의 가중(假僧)나무, 진짜 중이란 의미의 참중(眞僧)나무가 있다. 또 거제수나무의 한자이름은 황화수(黃樺樹)이나 수재를 막아주는 나무란 뜻의 거제수(去災水)로 해석하기도 하며 괴화(槐花)는 회화나무의 중국이름인데 '괴'의 중국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 혹은 회나무가 되었다 한다. 또 쉬나무는 중국의 오수유에서 나라 이름 '오'가 빠지고 수유나무로 부르다가 쉬나무가 되었으며 북한 이름은 아직도 수유나무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능금[林檎]에는 새가 온다고 해서 글자를 禽자 변에 쓰고, 배[梨]는 명치[隔]를 이롭게 한다고 해서 글자를 利자 변에 쓴다. 귤나무를 나타내는 柑은 맛이 달다고 해서 글자를 甘자 변에 쓰고, 대추[棗]는 가시가 있다고 해서 글자를 棘자 변에 쓴다.'하여 이름을 붙인 연유를 알 수 있다.

11. 동물 이름

개, 곰, 소, 호랑이, 여우, 고양이, 박쥐, 병아리, 까마귀, 까치 등이 있으며 특히 '개'라는 접두어는 본래의 나무와 비슷하나 무엇인가 좀 떨어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나리 꽃과 비슷하나 나리가 아니란 의미의 개나리를 비롯하여, 개느삼, 개다래, 개머루, 개벚나무, 개벚지나무, 개비자나무, 개박달나무, 개산초, 개살구, 개서어나무, 개오동, 개옻나무, 개잎갈나무, 개회나무가 있다. 기타 곰딸기, 곰의말채, 호랑가시나무, 호랑버들, 호자나무, 쇠물푸레나무, 여우버들, 괭이싸리, 괭이신나무, 박쥐나무, 병아리꽃나무, 까마귀머루, 까마귀밥나무, 까마귀베개, 까마귀쪽나무, 까치박달, 까치밥나무 등인데 개, 까마귀 등이 접두어로 붙은 경우가 가장 많다.

12. 지명

산 이름이 붙은 경우는 백두산자작나무, 백운산물푸레, 지리산오갈피나무, 한라산철쭉이고 특정 지방의 이름이 붙은 것은 강계버들, 광능물풀레, 서울귀룽나무, 설령오리나무, 제주광나무, 풍산가문비, 회양목 등이다. 나라 이름인 경우는 구주물푸레, 구주소나무, 구주피나무, 당느릅나무, 당매자나무, 당버들, 미국산사나무, 서양까치밥나무, 서양측백, 일본목련, 일본잎갈나무, 일본젓나무, 중국굴피나무, 중국남천, 중국단풍나무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보리수(甫里樹)는 보리라는 마을에서 생산되는 나무의 의미로 추정된다.

13. 비슷한 이름

나무이름은 비슷하나 과 혹은 속이 다른 수종에는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밤나무>, <오동나무, 벽오동, 개오동, 꽃개오동, 유동나무>가 있고 과는 같으나 속이 다른 이름은 , <까치박달, 개박달나무, 물박달나무, 박달나무>, <돌배나무, 콩배나무, 아그배나무, 팥배나무>등이 있다.

14. 다른 나라의 일반명

네군도단풍(negundo), 방크스소나무, 리기다소나무(rigida), 스트로브잣나무(strobus pine), 테다소나무(teada), 아까시나무(acacia), 피라칸사(pyracantha)등의 예가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추천명에 대해


종종 찾는 식물 동호회에서 아래와 같이 현호색의 이름이 많이 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도감마다 일부 달랐던 식물명의 표준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추천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간단히 제 생각을 올려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의견도 듣고 싶군요.

1. 첫째로 저는 찬성입니다.
학명조차도 계속 변하고 있어 처음 이 분야를 접하는 초보자에게는 혼동되는 부분인데
우리말로 사용되는 식물명에서조차 혼동이 있다면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어떤 저명한 의견을 따르느냐에 따라 분류방식도 달라지고 때로는 같은 식물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름으로 불렸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현호색의 경우도 많은 이름들이 통합되기도 하고 변경되기도 하는군요.
=====================================
구분 추천명 ---------기타국명
정명 흰현호색
정명 왜현호색--------- 산현호색
정명 흰왜현호색
정명 줄현호색
정명 진펄현호색
정명 좀현호색----------- 제주현호색
정명 흰좀현호색
정명 섬현호색
정명 갈퀴현호색
정명 흰갈퀴현호색
정명 탐라현호색
정명 염주괴불주머니----------- 갯현호색
정명 털현호색
정명 난쟁이현호색 ------------난장이현호색
정명 자주괴불주머니 ------------"자주현호색, 자지괴불주머니"
정명 선현호색
정명 점현호색
정명 각시현호색
정명 남도현호색
정명 현호색 ---------------"가는잎현호색, 댓잎현호색, 둥근잎현호색, 빗살현호색, 애기현호색"
정명 들현호색
정명 조선현호색
정명 완도현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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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나 인터넷의 동호회에서 올라오는 이러한 예시와 통합되었는데 왜 여기에 따르지 않느냐.
예전 것은 이제 틀린 것이 아니냐는 말들은 조금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분류학을 했지만 사람의 이름과 달리 생물의 이름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의 경우도 개명을 하고 성을 바꾸기까지 하고 혹은 이름을 몇개씩 가지기도 하고
직업상 이름을 따로 가지기도 하는 등 다양하죠.
가만히 목록을 보니 현호색이라는 추천명에 제가 다른 종이라고 알고 있었던
빗살현호색, 애기현호색 댓잎현호색이 끼어있군요.
다르게 불리던 녀석들을 이젠 현호색이라고 불러야 할까 싶습니다.
실제로 녀석들을 보면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이 변이라고 보아야 할지
혹은 생식적인 격리가 적어 서로 교배가 되기 때문이라고 봐야할지 솔직히 확신은 서지 않는군요.
하지만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현재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것입니다.
문제시 될 경우에만 인용을 분명히 밝히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출판의 경우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따라 표준안대로 출판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입니다.
굳이 따르지 않아도 표준안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다양성의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사투리를 포함해 국가표준식물에 이명으로도 처리되지 않은
지방에서 불리는 수많은 식물 이름조차도 소중하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듣게 되지만 도리어 정명이나 추천명보다도 친근하고 마음에 다가오는 이름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의 특성을 잘 살리고 아름다운 이름들을 보전하는 것도 표준안의 마련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은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명명의 다양성은 유지하되 기준이 선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인다면
시시비비를 굳이 가리지 않아도 올곧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제사용 과일에 담긴 깊은 뜻


아래글은 [인디카]라는 사진 동호회의 용바우님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원글은 아래 주소를 참고하세요.
http://www.indica.or.kr/bbs/zboard.php?id=lif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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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오르는 과일 가운데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세 개 있다. 대추, 밤, 그리고 감이 그것이다. 다른 과일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이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없이 제사를 지내면, 그 제사는 무효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 세 가지는 제사상에 필수적이다.

왜 우리 조상들은 이 세 가지 과일을 꼭 넣어서 제사를 지냈을까? 이 세 가지 과일 하나하나에 우리 조상들의 깊은 뜻이 숨어 있음을 며칠 전에 어떤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대추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올망졸망 달리는 것처럼 후손이 번창하라는 뜻일 것이다. 요즈음도 새색시가 폐백을 드릴 때 시어머니가 대추를 던지면 새색시가 치마폭으로 그 대추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열매가 많이 달리는 것은 비단 대추만이 아니다. 대추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 한 가지 특성이 있다. 대추꽃은 피었다 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지, 꽃으로서 그냥 지는 법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왔으면, 대추처럼 후손을 적어도 하나는 만들어 놓아야 자기 도리를 다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밤은 무슨 뜻일까? 밤에도 우리가 잘 모르는 신비한 특성이 있다. 다른 모든 과일은 씨앗을 뿌려서 싹이 트면 그 씨앗 자체는 썩어서 없어진다. 그러나 밤만은 그 씨앗이 썩지 않고 생밤인 채로 죽을 때까지 보존된다고 한다. 몇십 년 된 아름드리 밤나무도 그 뿌리에는 자기 생명의 원천인 씨밤을 소중히 달고 있다. 따라서 밤이 상징하는 것은 조상과 나와의 지속적인 연결이다. 나의 생명의 원천이 조상들이며, 그 조상들은 한시도 나와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님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은 밤을 반드시 제상에 올렸다.

이제 감이 남았다. 감은 또 어떤 신비한 특성이 있는가? 특히 우리 나라 이북 지방에서는 감이 나지 않기 때문에, 이북 사람들은 감을 구하지 못해서 곶감을 써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왜 감을 제상에 꼭 올렸을까? 탐스러운 감씨를 심으면 감이 달릴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무리 좋은 감씨를 심어도 달리는 것은 고욤이다. 고욤은 엄지 손톱만한 과일로 감을 축소해 놓은 모양이다. 다닥다닥 붙어서 열리는데, 생김새만 감과 비슷할 뿐 떫어서 먹기 어렵다.

감을 만들려면 묘목이 삼사 년 쯤 컸을 때 접을 붙여야 한다. 즉 자연 상태 그대로 놓아 두어서는 감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감이 상징하는 바는 명확해진다. 자식을 놓아서 밥을 먹여 기른다고 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인간 구실을 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교육시키기 데는 접을
붙이기 위하여 가지를 칼로 째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를 지도 모르지만, 참된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임을 감이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제사에 쓰는 과일 하나를 고르는 데도 이렇게 깊은 뜻을 두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지난 몇십 년 동안 제사를 지내면서도 거기에 담긴 뜻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런데 이 흥미로운 사실을 왜 나는 나이가 40이 넘도록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까? 그런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없었고 선생님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또 나이 많은 동네 어른들도 들려준 적이 없다. 주위 선생님에게 물어 보아도 처음 듣는 이야기란다.

100년 전만 해도 상식적인 이야기였다는데.... 우리 전통을 경시하는 풍조 속에서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좋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소멸되어 버린 것 같다. 제수용 과일에 담긴 이런 여러 가지 이야기는 제사를 지내기 싫어하는 요즈음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해줄 수 있는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 것 같다. 다른 제사 음식에도 내가 아직 모르고 있는 많은 좋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차분히 연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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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분이 글을 잘 쓰신 것도 있지만 읽은 나로서도 무척 재미가 있어서 함께 읽고자 옮겨본다. 제사를 지내는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 제사때 올리는 음식들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들이 많았다. 음식의 위치나 음식들의 의미들. 종종 아버지께 여쭈어보면서 의미들을 조금씩 알고는 있지만 위 글쓰신 분처럼 좀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고 싶다. 의미야 갖다붙이면 되는 것일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생물의 생활사나 습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제례의식을 올리는 것 자체에 의미도 있겠지만 제사상을 차리면서 음식 하나하나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보다 의미있는 제사가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는 분들은 소개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역마다 제사상 음식도 차이가 난다고 하던데 그런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음식은 모두 생물이니까 말이다.

식물이름유래에 관한 자료


식물이름에 관심을 가지고 오래전부터 찾아모은 자료들입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찾아 보세요.

1. 허북구, 박석근. 2002. 재미있는 우리꽃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 중앙생활사, 서울. 229p
2. 황중락, 윤영활, 이기의. 1991. 조경식물명의 유래에 관한 고찰. 한국정원학회지 9: 5-29
3. 황중락, 윤영활. 1992. 한국 수목명의 유래에 관한 고찰. 한국정원학회지 10: 73-104.
4. 황중락·이기의·신우균. 1997. 한국 草本性 造景植物名에 관한 硏究 -中國名과 日本名에서 유래된 이름을 중심으로-.
韓國造景學會誌 25: 20-30.
5. 최상범, 1998, 조경식물 학명의 발음에 대한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6: 44~50
6. 최상범, 1993, 조경식물의 학명에서 종명의 어원 연구 한국조경학회지 21: 8~16
7. 나무이름의 유래, 박상진 (경북대)
8. 임소영, 1997, 한국어 식물이름의 연구, 한국문화사
9. 임소영, 1999, 꽃이름의 생성 과정과 인지 과정, 한국어의미학회, 한국어 의미학 4: 65-97
10. 임소영, 1999, 한국어와 영어의 식물이름 비교, 국제한국어교육학회, 제9차 국제학술회의
11. 야생화 이름의 유래에 대한 기초지식

이외에도 절간된 것으로 아는데 이상권님의 [삶이있는 꽃이야기] 시리즈가 있다.
위의 자료중 절반 2,3,4,5,6,9,10번은 파일로 가지고 있습니다.
1,8번은 책입니다.
7,번은 경북대 박상진교수님의 잘 알려진 글이라 쉽게 검색할 수 있을 겁니다.
11번은 허복구, 박석근 저 [우리 꽃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의 내용을 요약한 글로 이 역시 쉽게 검색됩니다.

아카시아 & 아까시나무


아~ 가시~
줄기를 만지면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마는 나무다.
아까시나무로도 쉽게 기억이 되지만 녀석은 역시 아카시아로 발음되는 것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어릴 적 보았던 아카시아껌 광고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추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녀석의 꽃을 산에서 드러누워 따먹다가 집에 식구들에게 따준다며 비닐봉지에 한가득 꽃을 따서 가져온 기억이 난다. 여름이면 온 산을 뒤덮었던 아카시아

그리고 그 속에는 항상 저와 형, 그리고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날 아침 집문을 열었을 때 문득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에 깜짝 놀라곤 한다.
이제 여름이 오는구나... 이것이 내가 여름의 시작을 느끼는 방식이다.

원래 아카시아라는 식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Robinia pseudoacacia L. 아까시나무의 학명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pseudo-는 '가짜의'라는 의미로 잎모양과 가시가 있다는 점이 유사할 뿐 전혀 다른 나무다. 진짜 아카시아나무는 잘 알려진 것처럼 개미와 공생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끔씩 어린 조카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데 몸에 베었는지 조카에게도 조금씩 꽃이 핀 야생화를 가르쳐준다.
녀석이 관심있어 하는 것들만...
작년에 가르쳐 준 꽃마리와 애기똥풀 같은 것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내심 뿌듯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녀석과 오르면서 조카의 관심은 온통 아까시나무였다.
꽃 자체도 이쁘지만 한 송이를 따서 삼촌은 어릴 때 아카시아꽃을 따서 뒷꽁무니를 떼어내고
꿀을 빨아먹었다고 가르쳐주니 내내 따라한다.
집에 가서 엄마준다며 여러 송이 챙기기까지 한다.

어릴적 조카가 학원에 시달리고 있을 나이에 친구들과 산을 마음대로 오가며 이맘땐 지금보다도
더 아카시아로 가득한 산에 누워 아카시아를 종일 따먹기도 했었는데 종종 요즘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워 아쉽다.

산능선을 지나다가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만났는데 아카시아를 따먹는 조카를 보고
함께 온 아이들에게
"저것봐~ 저 형아도 아카시아꽃 따 먹잖아. 엄마, 아빠도 어릴 때 먹었다니까?"
한다.

요즘엔 공기가 안 좋아져서 따먹으면 안된다고 어른들이 자주 그래서 경험조카 하기 어려운 실정인가보다.
역시나 집에오니 어머니도 손주가 들고 있는 걸 보시고는 요즘엔 먹으면 안된다며 역성부터 내신다. ^^;;
그래도 난 조카와 나들이 갈 때면 피어있는 진달래나 아카시아도 따먹고 위험한 건 알려주고
산을 안전하게 오르는 법을 배우게 해주고 싶다.

산을 올라도 깨끗하지 못한 자연은 올바로 생명을 이해시키기보다 눈으로만 보고 만지거나 먹어서는 안되는 지저분한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엔 지금보다 아카시아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늦봄 아카시아가 필 때 즈음이면 산 이곳저곳에 벌통이 놓여지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군데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아카시아가 번식력이 너무 왕성해 주변나무의 성장을 막고 재목의 활용도가 적다는 이유로 대량으로 베어지고 다른 여러 나무들이 심어졌다. 그래서 오래전 여름의 시작무렵 진하게 산바람을 타고 내려오던 아카시아의 향기는 간간히만 전해질 뿐이다. 내가 어릴 땐 이맘때면 산에 굳이 안가도 온동네에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했었는데 너무 다양화만 외치다보니 그러기위해 희생되어지는 부분도 많아지기 마련인가보다.

아까시나무는 아직도 산에 많은 수종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많이 한 작업중 하나가 벌목이었는데 부대주변의 진지공사는 물론이고 작업이 엄청 많았다. 아까시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목을 하다보면 가장 성가신 나무가 바로 이 녀석이다. 문제는 가시.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시에 찔리면 아프니까 '아~ 까시'라는 의미의 아까시나무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 건가 싶다.
생물학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종 내게 질문을 하곤 했던 고참에게 이 나무의 유래를 장난삼아 위처럼 이야기했다가 몰매맞을 뻔 했던 기억도 난다. 장남이었는데. ^^

가시를 비롯해 아까시나무에 대해 안좋은 시선들이 많은 것 같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도 안좋은 기사를 많이 내보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최근에서야 사라지고 있는 아까시나무가 밀원식물로 매우 유용한 식물이고 목재도 그동안 활용도를 못찾아서 그렇지
용도에 맞게 쓰면 좋은 목재에 속한다고 한다. 아까시나무는 콩과식물로 주변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지는 몰라도 척박한 땅에서는 초기에 정착시켜서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데에 그만인 식물이다. 번식력이 좋고 공해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벌거숭이산에 아까시나무를 심었던 이유는 바로 산을 비옥하게 하고 더불어 밀원식물로서 그만이었기 때문에 심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공로는 뒷전으로 현재의 모습만 보는 것은 좀 안타깝다.

아무래도 이름때문이라면 좀더 친숙한 이름으로 아가씨나무라는 개칭은 어떨까?
순백색의 하얀 꽃송이에도 잘 어울리는 이름일 것 같은데...
그러면 아까시나무의 이미지도 좀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도시에서도 마음껏 아카시아꽃을 먹을 수 있는 때가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노린재나무 - 노린재? & 노란재?


곤충을 전공하고 식물을 함께 공부하고 있는 내게 이름이 묘연하게 다가온 녀석 중 하나가
바로 이 노린재나무다.
노린재라는 곤충과 나무의 절묘한 결합....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일까?
실은 식물야외실습을 통해 담당조교로부터 노린재나무의 유래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나 좀 억지스런 작명이란 느낌을 져버릴 수가 없었다.
노린재나무는 낙엽이 진 뒤 태우면 다른 나무들과 달리 남은 재가 회색이 아닌 노란색을 띤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식물공부를 시작하면서 매년 보지만 녀석의 깔끔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그리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든 나무에 아름다운 이름이 붙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이왕이면 사람도 이름에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작명하는 경우가 많으니 나무 이름도 이왕이면 좋은 의미로 지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얼핏 곤충을 하는 사람이 들으면 노린재처럼 노린내라도 나는 나무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런 나무가 아니다.



노린재나무는 산중턱에서 자라며 봄에 아름다운 흰색의 꽃을 피운다. 관목으로 키가 작으며 가지가
가늘게 자라는데 꽃이 없어도 녀석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잘 살펴보면 위보다는 수평으로
자라는 습성이 있다. 아무래도 숲의 아래쪽에서 작은 키로 자라다보니 키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숲으로 들어오는 빛을 넓은 면적에서 받아들여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했는가 보다.
녀석을 안지도 10여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녀석의 낙엽을 태워본 적이 없다. 정말 노란색인지 한번즈음은
가을에 녀석을 찾아 태우면서 이름의 유래를 상기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할미밀망, 사위질빵 - 사위, 할머니


식물이름을 도감을 통해서나 배우면서 익히다보면 한번 들어서는 좀처럼 외워지지 않거나
이름이 어려워서 쉽게 잊어먹는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할미밀망과 사위질빵...
이 녀석들도 그 중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할미와 사위까지는 알겠는데 그 뒤는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임소영님의 한국어 식물이름의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서 유래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할미와 사위는 내가 생각한 그대로 였다.
밀망은 등에 매다는 의미이고 질빵 역시 등에 지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럼 등에 맨다는 공통점이 나온다.
그렇다면 왜 할미와 사위라는 명사를 쓰고 등에 멘다는 의미의 단어를 합쳐놓은 것일까?
위 논문에서는 줄기의 튼튼한 정도로 이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그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면

할미질빵(할미밀망)은 덩굴나무의 한 종류인데 할머니가 매는 질빵을 만들 정도로 약한 [성질]을 가진 덩굴을 지시하고, 이에 비해 사위질빵은 사위가 매는 질빵을 만들 정도로 비교적 튼튼한 [성질]을 가진 덩굴을 지시한다. 이때에도 할머니와 사위에 대한 한국인의 인지태도를 엿 볼 수 있는데 할머니는 약한 사람의 대표적인 존재로(관용표현 중에도 할머니 콧김 같다는 표현이 있다). 반면에 사위는 일을 잘 할 수 있는 힘이 넘치는 존재로 인지함을 알 수 있다.


이유미박사님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나무 백가지에서 소개된 사위질빵의 이야기는 위 논문과는 다르게 사위질빵의 줄기역시 매우 약하다고 되어있다. 임소영 박사님은 직접 식물을 경험한 것보다는 여러 자료와 인문학적인 해석이 있었다면 이유미박사님은 전공자로서 경험 및 인문학적인 내용을 곁들여 설명하고 있으니 내겐 이유미박사님의 의견에 더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 부분을 인용하면
옛날부터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도 있듯이 처가에 가면 사위는 으레 극진한 대접과 사랑을 받게 마련이다. 예전 일부 지방에서는 가을이 되어 추수할 때가 되면 사위가 처가에 가서 가을걷이를 돕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장인과 장모의 마음이 오죽했으랴. 그래서 다른 일꾼들과 함께 일하던 농부들이 반은 불편으로 반은 부러움으로 약하디 약한 이 식물의 줄기로 지게의 질빵을 만들어 줘도 끊어지지 않겠다며 놀렸다고 한다. 그 후 이 덩굴식물의 이름은 사위질빵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유미박사님 책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할미밀망도 비슷한 이유에서 붙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미밀망은 할미질빵으로도 불리는데 밀망이든 질빵이든 지금도 사용하는 맬빵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다.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시는 것이 자식들에게는 안쓰러워서 일부러 많이 짐을 싣지 못하게 약한 줄로 질빵을 만들어 드리지 않았나 싶다.

이름의 유래야 다 후세의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불러주는 것이라지만 이 두 식물의 이름의 유래를 알고나니 그저 식물의 약한 줄기의 특성에 대한 이름부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네의 삶이 너무나도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둘다 효와 사랑, 아끼는 마음이지 않은가. 분류학을 하면서 외부적인 특징이나 먹이식물의 이름만을 따서 붙여주는 이름이 생각해보면 많이 부끄럽다. 이름이란 어느 개인이 붙여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머릿속에 남고 오랫동안 기억되어 이름불러질 수 있는 건 이런 이야기가 있고 그 시대의 정서가 담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백일홍, 배롱나무 그리고 백일(百日)


백일홍...
백일동안 붉은 색의 꽃을 즐길 수 있다는 의미다.
배롱나무...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은 목백일홍나무다.
역시 백일홍이다.
같은 의미이다.

꽃이 100일 그러니까 3달이나 원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름만 듣고는 몰랐는데 실제로 녀석들을 보고나서 정말 잘 지어진 이름이란 생각을 했다.
한번 핀 꽃이 100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꽃이 피고지고 하면서 사람이 보기에는 거의 3달간 꽃을
즐길 수 있다는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3달은 아니지만 다른 꽃들이 단명하는데 비하면 비교적 오랫동안 꽃을 감상할 수 있는 매력적인
꽃과 나무이다.



백일홍나무를 빠르게 발음하면 얼추 배롱나무처럼 들리기도 하다.^^
내 생각에는 음이 축약되고 생략되면서 보다 발음하기 쉬운 배롱나무로 변한 것이 아닌가 싶다.
둘다 백일홍이 들어간다고 해서 비슷한 꽃모양이나 같은 식구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전혀 다른 과에 속하고 꽃모양도 아주 다르다.

삼베를 짤 때 쓰는 삼(대마)이란 작물이 있다. 이 작물의 다른 이름 중 백일초라는 이름이 있는데 이때의 백일도 기간을 의미한다. 씨뿌리고 수확하기까지 100일 정도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은 대마초라하여 잎, 꽃, 뿌리 등에 마약 성분이 있다하여 재배하는 경우 정기적으로 건강진단을 받게 하고 농가에서는 신고를 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100일 정도 자란 대마는 예상을 깨고 사람키를 훌쩍 넘는 키 큰 작물이었다. 자라는 속도가 아주 빠른 것 같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관련된 들꽃이야기


[고부간의 갈등]이란 말을 많이 한다.
[고부] = 姑,시어미 [고], 婦, 며느리 [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위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갈등(葛, 칡갈; 藤, 등나무등)은 모두 식물의 특성이 들어가 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칡이나 등나무나 자라는 걸 보면 마무 마구 뒤엉켜 자라는 덩굴 식물인 걸 보면 갈등이란 바로 그렇게 엉켜버린 감정을 말하는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그러하다고 해서 [갈등]이란 말은 유래했는지도 모르겠다.

식물의 이름을 살펴보면 며느리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몇 개 있다. 때로는 이쁜 모양을 묘사하기 위해 붙은 것 같은 이름도 있지만 며느리배꼽이나 며느리밑씻개와 같이 엉뚱한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유난히 며느리의 힘든 시집살이가 담긴 이름이 많은 것 같다. 사위나 남편, 시아버지와 같은 남성적인 이름은 식물이름에 잘 포함되지 않고 여성적인 이름들이 식물명에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아마도 여성들이 주로 음식을 하고 풀꽃문화라고도 부르는 문화적인 요소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가 포함된 이름에는 며느리밥풀꽃(금낭화), 꽃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등이 있다.

[꽃며느리밥풀]이나 며느리밥풀꽃으로도 불리는 [금낭화]는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은 바로 먹는 문제에서 시작되었나보다. 밥이 잘 되었나하고 조금 떠서 입에 넣어보다가 그랬는지 자신은 굶어가면서 자신의 남편과 부모님 공양하다가 너무 배고파 남은 밥이라도 몰래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걸려 구박받고 맞다가 죽었다는 가여운 며느리 이야기다. 혹은 밥이 잘 익었나 잠시 밥풀 몇개를 집어 먹었다가 시어머니에게 혼이나고 구박받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그 후 며느리의 무덤가에 먹는 데 한이 맺힌 듯 마치 밥을 먹다가 채 다 넣지 못하고 입술에 밥풀이 몇알 붙어있는 듯한 꽃이 피웠다는 전설이다.



위 사진을 보면 며느리입술에 묻어있는 몇 개의 밥풀모양이 잘 보인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은 줄기에 가시가 있는 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 식물은 실제로 만져보면 줄기에 잔 가시가 많아 거칠거칠하고 지나다보면 옷에 들러붙을 정도다. 야외에 나가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인데 풀의 특성과 이름 사이에 시어머니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라도 하는 걸까? 무슨 감정이 그리도 많이 쌓였는지 하필이면 며느리가 밑닦을 때 손에 걸리는 풀이 이 풀이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인지 모르겠다.

[며느리배꼽]이란 풀의 이름은 더 이상하다. 식물이름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게 정말 식물이름이냐며 반문할지도 모를 그런 이름이다. 며느리가 이쁘면 더 이쁘지 흔하디 흔한 며느리배꼽이라는풀의 배꼽모양과 비슷하다니 설마 몸가짐을 더 단정히 해야할 며느리가 흔한 풀들마냥 아무데나 배꼽을 드러내고 다녔을까? 아들의 아내사랑을 시기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다.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그 시절엔 배 고픈 만큼 먹을 것이 궁했고 흔한 풀을 나물로 먹을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구태어 다른나라의 전설을 찾지 않고도 풀이나 꽃에 얽힌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참 많다. 그만큼 풀문화와 함께 해 온 역사다. 옛날이야기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갈등은 칡이나 등나무가 일부러 엉키는 것이 아니듯 어쩜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한 풀들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해가 갈수록 조금씩 다른 경험, 다른 생각으로 다가올 때면 들꽃들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곤 한다.

난 군에서 이 이야기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장기가 특별히 없던 내게 고참은 자주 노래며 장기를 요구했다. 물론 그때마다 다소 긴장한 게 사실이다. 어느날 소각장에서 고참과 함께 소각장을 지키며 분리수거를 할 때였는데 그 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고참은 그늘에서 쉬고 싶으면 재밌는 이야기를 하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맘에 들면 쉬게 해준다는 것이다. 난 한참을 그냥 서 있다가 밑져애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평소 선배들에게 들었던 식물 이야기들을 묶어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얶힌 이 이야기를 생각해 내었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들렸는지는 몰라도 처음 듣는 식물이야기에 모두들 놀란 눈치였고 난 바로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웃긴 이야기도 아니고 아주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모두들 신기하게 쳐다보고 나를 주목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때론 이런 작은 지식도 유용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땐 이 이야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도감을 펼치며 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도 기쁘지만 이렇게 우리네 문화와 살아온 이야기들을 만났을 때는 더 기쁘다. 그리고 나 역시 생물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싶다. 언젠가 내가 생물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줄 때에는 내가 들었던 이런 이야기들 말고도 내가 겪었던 이야기나 새롭게 만들어 낸 이야기들도 함께이기를 바래본다.

타래난초의 타래란?


타래난초는 마치 여름철 즐겨먹었던 스크류바처럼 적당히 꼬여면서 피어올라가면서 꽃을 피우는 녀석이다.
야생화를 공부하다가 만난 녀석을 도감에서 찾다가 타래라는 말을 만났다.
처음엔 타래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가 대학때 의류수선집을 하시는 아버지가게에서 일하면서 우연히 타래란 이름이 붙게된 연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문헌을 참고로 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때문에 붙은 이름임에는 틀림이 없어보인다.



어릴적 아버지는 양복점을 하셨는데 당시 실패에 감겨있는 실말고 따로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여러개를 중간부분을 허리묶음한 뒤에 미싱한켠에 걸어두곤 하셨다.
이걸 실타래라고 하는데 자주 쓰는 실을 쓰기 적당한 길이로 미리 잘라서 편하게 쓰기 위해서 만들어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옛날에나 봄직한 양손에 실을 걸고 교대로 움직여가면서 실을 정리해 아래 그림처럼 잘 뭉쳐놓은 것도 역시 실타래라고 부른다.
그런데 실타래는 실한가닥 한가닥일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게 되는데 바로 꼬인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했는데 커서 아버지가게에서 다시 실타래를 보면서 왜 꼬이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실타래속에서 실을 한가닥만 뽑아놓고보면 꼬이는 현상이 확연히 줄어드는데 자세히 이 한가닥을 관찰하면 한가닥의 실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여러 개의 가는 실이 꼬여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꼬임이 한 가닥일 때는 잘 보이지 않다가 여러개가 모여 큰 실타래가 되면 한가닥 한가닥의 꼬임현상이 모여져 적당한 곡선을 이루며 확연한 꼬임현상을 보인다.

타래난초의 타래에 '실-'이란 한 단어만 붙이면 타래가 실타래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잊혀져가는 실타래의 꼬임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아마도 이 타래난초를 만나는 것이 더 반갑고 지난 향수마저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싶다.



사람간의 만남, 다른 생명과의 만남, 여러 사건들...
한사람으로서 사는 인생은 실 한가닥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보면 여러개의 가느다란 섬유들이 모여이루어진 것처럼 인생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인연, 사건들이 있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되는 점이 많이 닮았다.
게다가 사회생활은 실타래를 참 많이도 닮았다.
혼자있을 때는 잘 안보이다가도 사람들 속에서 많은 일들을 겪다보면 자신의 모르던 모습들을 새로이 발견하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 속에서 끊임없이 배워나가는 모습은 실타래 속 한가닥 실같다는 생각이 든다.

연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식물들... 연꽃, 수련, 목련, 한련




연못 위에 떠 있는 순백색의 화려한 꽃. 하지만 그리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아담한 사이즈의 꽃을 피우는 물위 식물이다. 연꽃이라 보통 부르지만 더 작고 원래 색은 흰색을 띤다.

처음 수련을 본 건 경복궁의 향원지에서였다. 당시만 해도 필카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때인데 내가 가진 렌즈라고는 MF 50mm 표준렌즈가 전부였었다. 쉽게 말해 거의 사람의 시각보다 조금 좁은 화각으로만 담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망원이나 준망원의 접사렌즈가 없었기 때문에 저만큼 떠서 살랑거리는 새하얀 수련은 처음부터 내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꽃 중 하나였다.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가까이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필름에 담는 것도 어려웠었다. 그 뒤로도 여러번 수련을 만나보았지만 역시 처음 본 때의 느낌같은 건 쉽게 잊혀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굳이 연꽃과 수련을 택하라고 한다면 난 수련을 택하고 싶다. 화려한 연꽃도 좋지만 그만큼은 아니지만 수수한 느낌이 나는 수련에 더 마음이 가는 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처음 수련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 물에 떠 있는 연이란 의미로 물 수(水)를 쓰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도감을 찾다가 수련이 그런 의미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직접 보게된 것은 2005년 특이하게도 부처님 오신 날 서울의 조계사를 찾아갔다가 근처에서 파는 수련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점심즈음에 갔다가 잠시 다른 곳을 들르고 저녁에 연등행사를 보기 위해 다시 왔는데 낮에 본 활짝 핀 수련은 꽃봉오리를 점점 닫으며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하~ 그래서 수련이구나. 밤이 되면 꽃봉오리를 닫고 잠을 잔다고 해서..'

잠잘 수(睡). 처음 내가 착각한 수련(水蓮)이나 원래 이름인 수련(睡蓮)이나 둘 다 녀석에게는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생각해보면 연(蓮)이란 이름이 들어간 식물이름이 몇가지가 있는데 하나같이 재미있다. 그 기준에 서 있는 것이 대표적인 연꽃이다. 그리고 수련, 목련, 한련이다. 모두 전혀 다르게 생긴 식물이지만 형태만 본다면 비슷한 점들을 몇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수련(睡蓮)
- 위에서도 말했듯이 녀석은 잠자는 수련이다. 낮에는 활짝 피어 눈부신 미소를 짓지만 밤에는 잠자는 미녀마냥 꽃봉오리를 오그리고 자고 아침이면 기지개펴듯 멋지게 다시 피어난다.

목련(木蓮)
- 위의 네 녀석들 중에 이 녀석만 유일하게 나무다. 하지만 커다란 꽃잎을 달고 봄이면 잎사귀도 없이 하얀꽃을 피워 유난히 더 꽃이 커보이는 녀석은 꽃만보면 여지없이 연꽃을 닮아있다. 그래서 녀석은 나무위에 피는 연꽃이다.

마지막으로
한련(旱蓮)
가물 한(旱)을 써서 쓴다.
이 녀석의 이름을 가장 나중에 안 것 같다. 생긴 것이 참 이국적이다. 한련과에 속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 녀석 한 녀석이 알려져 있다. 한련하면 떠 올리는 모습은 연꽃의 그것과 비슷하다. 꽃모양은 어디를 봐도 연꽃과 비슷한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잎은 너무나 닮아있다. 아마도 녀석은 연꽃의 잎모양때문에 붙은 이름인 것 같다. 잎줄기도 잎끝이 아닌 잎의 중간에 어중간이 붙어있고 잎사귀의 면도 하늘을 향한 것이 많다. 연꽃은 수중에 잎을 띄우고 있지만 이 녀석은 뿌리만이 물을 쫒으며 잎은 건조한 지상으로 힘차게 펴 올려 붙은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한련일 것이다. 잎모양뿐 아니라 비슷한 게 또 한가지 있는데 그건 한련에 물을 줘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잎위로 떨어지는 동글동글한 물방울들이 또르르르 떨어진다. 잎도 무척 얇고 잎표면에 털이 거의 없어 물을 주어도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못하고 금새 땅바닥으로 흘려버린다. 종종 잎사귀에 남은 물방울들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아주 이쁘게 방울져 있어 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이들도 보았다. 연꽃도 이와 비슷한데 이런 점들이 다른 식구지만 이름만큼은 유대관계를 맺게 해준 이유일 것이다.

이 넷은 모두 다른 특징들로 별개의 가족들에 속해있다. 하지만 이들은 닮은꼴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름을 붙여준 사람들의 재치또한 감탄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