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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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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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에 관련된 들꽃이야기


[고부간의 갈등]이란 말을 많이 한다.
[고부] = 姑,시어미 [고], 婦, 며느리 [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은 위 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잘 알려져 있다.
갈등(葛, 칡갈; 藤, 등나무등)은 모두 식물의 특성이 들어가 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칡이나 등나무나 자라는 걸 보면 마무 마구 뒤엉켜 자라는 덩굴 식물인 걸 보면 갈등이란 바로 그렇게 엉켜버린 감정을 말하는터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가 그러하다고 해서 [갈등]이란 말은 유래했는지도 모르겠다.

식물의 이름을 살펴보면 며느리의 이름이 들어간 것이 몇 개 있다. 때로는 이쁜 모양을 묘사하기 위해 붙은 것 같은 이름도 있지만 며느리배꼽이나 며느리밑씻개와 같이 엉뚱한 이름으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유난히 며느리의 힘든 시집살이가 담긴 이름이 많은 것 같다. 사위나 남편, 시아버지와 같은 남성적인 이름은 식물이름에 잘 포함되지 않고 여성적인 이름들이 식물명에 자주 출현하는 이유는 아마도 여성들이 주로 음식을 하고 풀꽃문화라고도 부르는 문화적인 요소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며느리가 포함된 이름에는 며느리밥풀꽃(금낭화), 꽃며느리밥풀,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등이 있다.

[꽃며느리밥풀]이나 며느리밥풀꽃으로도 불리는 [금낭화]는 같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어려웠던 시절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갈등은 바로 먹는 문제에서 시작되었나보다. 밥이 잘 되었나하고 조금 떠서 입에 넣어보다가 그랬는지 자신은 굶어가면서 자신의 남편과 부모님 공양하다가 너무 배고파 남은 밥이라도 몰래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걸려 구박받고 맞다가 죽었다는 가여운 며느리 이야기다. 혹은 밥이 잘 익었나 잠시 밥풀 몇개를 집어 먹었다가 시어머니에게 혼이나고 구박받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그 후 며느리의 무덤가에 먹는 데 한이 맺힌 듯 마치 밥을 먹다가 채 다 넣지 못하고 입술에 밥풀이 몇알 붙어있는 듯한 꽃이 피웠다는 전설이다.



위 사진을 보면 며느리입술에 묻어있는 몇 개의 밥풀모양이 잘 보인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은 줄기에 가시가 있는 풀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이 식물은 실제로 만져보면 줄기에 잔 가시가 많아 거칠거칠하고 지나다보면 옷에 들러붙을 정도다. 야외에 나가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인데 풀의 특성과 이름 사이에 시어머니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라도 하는 걸까? 무슨 감정이 그리도 많이 쌓였는지 하필이면 며느리가 밑닦을 때 손에 걸리는 풀이 이 풀이기를 바라기라도 한 것인지 모르겠다.

[며느리배꼽]이란 풀의 이름은 더 이상하다. 식물이름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게 정말 식물이름이냐며 반문할지도 모를 그런 이름이다. 며느리가 이쁘면 더 이쁘지 흔하디 흔한 며느리배꼽이라는풀의 배꼽모양과 비슷하다니 설마 몸가짐을 더 단정히 해야할 며느리가 흔한 풀들마냥 아무데나 배꼽을 드러내고 다녔을까? 아들의 아내사랑을 시기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인 것 같다.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그 시절엔 배 고픈 만큼 먹을 것이 궁했고 흔한 풀을 나물로 먹을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구태어 다른나라의 전설을 찾지 않고도 풀이나 꽃에 얽힌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참 많다. 그만큼 풀문화와 함께 해 온 역사다. 옛날이야기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갈등은 칡이나 등나무가 일부러 엉키는 것이 아니듯 어쩜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한 풀들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해가 갈수록 조금씩 다른 경험, 다른 생각으로 다가올 때면 들꽃들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곤 한다.

난 군에서 이 이야기로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다. 장기가 특별히 없던 내게 고참은 자주 노래며 장기를 요구했다. 물론 그때마다 다소 긴장한 게 사실이다. 어느날 소각장에서 고참과 함께 소각장을 지키며 분리수거를 할 때였는데 그 날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무척이나 더운 날이었다. 고참은 그늘에서 쉬고 싶으면 재밌는 이야기를 하든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맘에 들면 쉬게 해준다는 것이다. 난 한참을 그냥 서 있다가 밑져애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평소 선배들에게 들었던 식물 이야기들을 묶어 며느리와 시어머니에 얶힌 이 이야기를 생각해 내었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들렸는지는 몰라도 처음 듣는 식물이야기에 모두들 놀란 눈치였고 난 바로 그늘에서 쉴 수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웃긴 이야기도 아니고 아주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모두들 신기하게 쳐다보고 나를 주목하며 들었던 기억이 난다. 때론 이런 작은 지식도 유용할 수 있구나 싶었다. 그땐 이 이야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도감을 펼치며 생물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도 기쁘지만 이렇게 우리네 문화와 살아온 이야기들을 만났을 때는 더 기쁘다. 그리고 나 역시 생물들과의 만남을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나가고 싶다. 언젠가 내가 생물들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줄 때에는 내가 들었던 이런 이야기들 말고도 내가 겪었던 이야기나 새롭게 만들어 낸 이야기들도 함께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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