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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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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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용어의 우리말표현 1


예전에 정리해 본 것인데 최근에는 더 여러가지 대안이 나온 것 같다. 정리할 기회가 있으면 죽 정리해 보고 싶다. 이제는 좀 익숙해졌지만 처음 내게도 어려운 용어들이 많아 도감을 보는 것이 괴로울 때가 많았다. 처음 용어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지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북한에서 쓴 식물분류책이었다. 한자어가 많이 포함된 남한의 식물용어와 달리 용어의 우리말화에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인지 용어만 봐도 대략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개중에는 북한에서만 쓰는 말도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당시 우리의 용어현실에 비한다면 훌륭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했다. 어려운 용어를 쓴다고 전문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 싶다. 쉬운 표현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순화시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겠지만 과학의 전문화뿐 아니라 대중화를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 아닐까 싶다.

잎의 경우만 해도 잎끝, 잎가장자리, 잎몸, 잎자루와 동일한 표현으로 엽정, 엽연, 엽신, 엽병과 같이 한자어를 사용한다.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한글화로 변하고 있지만 내가 처음 식물을 접하던 때만해도 한자어가 굉장히 많았다. 오죽하면 식물분류학시간에 교수님이 강의하시면 한자에 토를 다는 동기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한자를 강조했던 고교 3년 덕에 토를 많이 달지 않고도 강의를 들을 수 있었지만 왜 같은 표현인데도 어려운 표현을 쓸까를 그때부터 고민했던 것 같다.

왜 영어권의 용어와 한자를 그대로 쓰는 것일까? 나 역시 논문을 쓰거나 할 때는 영어로 주로 썼기 때문에 용어집을 찾아가며 양식에 맞추었지만 우리말의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용어들이 그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인력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대학원때의 경험으로는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이미 전문용어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이 하는 작업이기에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용어들은 다시 대중에게로 가는 것이다.

아래표는 군에서 '우리가 알아야할 우리꽃 백가지'와 '우리가 알아야할 우리나무 백가지'를 다시 읽으면서 정리했던 것이다. 제대후 이런 노력들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다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중에게 관심을 받는 분야일수록 용어도 순화가 많이 된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야생화, 나비, 잠자리, 조류, 양서파충류, 포유류 등일 것이다. 가장 자주 듣는 생물의 이름과 관련된 책들을 중심으로 눈높이를 맞추기 시작하는 것이다. 표현이 정확하든 조금 틀리든 그것보다는 대중에게 눈을 맞추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생물과학협회에서 생물용어의 표준화와 순화작업을 꽤 오랫동안 진행해 온 것으로 안다. 번역서를 넘어서 우리말에 잘 순화된 우리네 생물용어집이 나오는 때를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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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생초본 - 한해살이풀
이년생초본 - 두해살이풀
다년생초본 - 여러해살이풀

낙엽교목 - 갈잎큰키나무
낙엽소교목 - 갈잎작은큰키나무
낙엽관목 - 갈잎좀나무
낙엽만목 - 갈잎덩굴나무
낙엽활엽교목 - 갈잎넓은잎큰키나무

상록교목 - 늘푸른큰키나무
상록관목 - 늘푸른좀나무
상록침엽교목 - 늘푸른바늘잎큰키나무
반상록성덩굴관목 - 반늘푸른덩굴좀나무

나자식물 - 침엽수 - 평행맥식물
피자식물- 활엽수 - 그물맥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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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과 어머니 - 익모초, 이질풀


우리의 들풀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면 예전 우리의 가난하고 소박했던 삶이 많이 깃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붙은 이름들이 그대로 굳어진 것들도 많을 것이다. 들풀과 관련된 우리네 이야기와 알뜰히 풀을 이용하는 문화를 일컬어 현대에는 풀뿌리문화라고도 부른다. 그중에서 오늘은 익모초와 이질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익모초라는 풀과 이질풀은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 아이가 배앓이를 할 때 민간요법으로 이 풀들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먹여 배아픔을 멎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녀석은 약이 귀할 때 엄마를 도와주는 풀이라고 해서 익모초(더할익, 어미모, 풀초 - 웹폰트가 한자를 지원 안 해주네요 ^^)라고 했으며 다른 한 풀은 파리가 앉은 음식물을 먹거나 청결하지 못한 환경에서 오염된 음식을 먹었을 때 설사를 계속하는 이질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이질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풀들을 야외에서 만날때마다 그 푸근하면서 모정이 느껴지는 것은 직접 보지 않아도 풀을 매개로 이심전심된 게 아닌가 싶다.

[선이질풀 2005.7.20. 예봉산]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국어책에 약손이라는 짧은 수필이 있었던 것 같다. 아픈 아이의 배를 문질러주면서 내 손은 약손이다. 얼른 나아라~ 얼른 나아라하면 신기하게도 아픈 배가 스르르 나았었다는 저자의 회고가 담긴 그런 내용이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난 약이란 것을 참 많이 먹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약은 되도록 먹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돌이켜 보면 내게도 어머니의 그런 따뜻한 약손의 기억이 남아있다. 커서 말이다. 내가 결혼하고 아버지가 되면 무턱대로 약을 먹이는 것보다는 여러가지 응급처치정도는 할 수 있도록 공부 좀 해야겠다. 아버지 손은 약손이다 하며 배를 문질러 주는 것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약에 대한 기억보다는 모정이나 부정을 기억하게 해주는 건 어떨지 모르겠다.

야생화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우리나라의 이야기에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었던 것 같다. 며느리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고 사랑과 이별, 슬픔에 대한 이야기는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공통점이다. 꽃에 대한 이야기에 여성이 많은 것은 꽃과 열매의 자연적 기능과 상징적인 의미가 통해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살림살이를 주로 했던 여성들에게 들풀과의 관계는 먹거리와 연결되거나 약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에 비해 나무를 지거나 힘이 들어가는 작업에 관련된 생물에 대해서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역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에서 묻어나는 문화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 풀문화, 꽃문화 우리가 가진 이런 문화유산은 참으로 소중하다.

외국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그들의 영웅, 문화, 자원이 그 안에서 느껴질 때마다 생물을 공부한 나로선 아직 우리에게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것을 느낀다. 시선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재천교수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학문간의 통섭과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비단 학문간이 아닌 영역을 넘어선 대화와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전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만남 그리고 열린 마음, 서로에 대한 존중 이 모두가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능성의 시험이 아닐까 싶다.

산수유 - 봄엔 노란빛 꽃을, 가을엔 붉은 열매를


산수유


봄을 대표하는 색깔을 적어보라고 한다면 가장 많이 나올 색깔이 무엇일까?
노란색, 분홍색, 흰색,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라색을 여기에 더하고 싶다.
개나리로 대표되는 노란색,
진달래와 벚꽃으로 대표되는 분홍색,
목련의 고풍스러운 흰색.
그리고 웬지 서글퍼지게 하는 제비꽃의 보라색...

그중에서도 봄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색깔을 대라면 난 꽃색중에서는 노란색을 댈 것이고
그냥 색으로 표현해보라면 스케치북에 연두색을 가장 먼저 집을 것만 같다.

이렇게 색을 결정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주위에서 봄마다 일어나는 기적같은 식물의 깨어남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의 색과 가장 먼저 피는 꽃의 색 중 유난히 노란색꽃이 많다는 점이 큰 이유겠다.

일찍 피는 꽃 중에서 야생화의 멋을 알기전 자세히 보면 모르고 지나가는 꽃으로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있다. 산수유는 이쁘면서도 유용하게 쓰이는 빨간색 열매를 달아 인가에서 더 많이 보이나 생강나무는 숲에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음에 볼 때 두 녀석이 너무나 닮아있었지만 이제는 녀석들이 굳이 잎이나 꽃을 달지 않아도 어느 정도 알아볼 만큼 녀석들과는 친해진 기분이다. 그러는 사이에 녀석들에게 별명도 몇 개는 붙여본 것 같다.

생강나무부터 불러볼까?
가지를 꺽으면 생강보다는 레몬향이 나는 듯해 레몬향나무,
세갈래로 나누어진 잎을 달아 삼지창나무.
가만있자....
생각해보니 생강나무는 별명을 자주 부른 것 같은데 산수유는 별 생각나는 게 없다.
그저 녀석을 볼 때면 늘 떠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군에서 행군했을 때다.
겨울이었는데 오랜 행군 후 잠시 쉬어가는 곳에서 우연히 만난 나무가 바로 산수유였다.
겨울이고 눈도 내린 뒤였는데도 유독 이 나무가 눈에 뜨인 이유는 온통 빨간색의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숲보다는 사람과 더 가까운 운명인지 역시나 인가 앞에 심어져 있었다. 하얀색 눈에 나무엔 잎하나 없는데 빨간 열매만이 가득 달려 보석이 나무 가지마다 걸린 것 같았었다.

나무백과였던가?
한약재로도 쓰이는 산수유씨를 모으기 위해 이빨로 일일이 다듬어 모아 내다판 돈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켰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딘지는 잊었지만 산수유로 유명한
마을이 있다고 들었다.

얼마나 장관일까 싶다.
봄이면 작지만 노란 꽃들이 온동네를 덮고 가을과 겨울에는 이렇게 빨간 보석을 매단 녀석들로
가득할 게 아닌가?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산수유를 다듬는
모습도 왠지 정겨울 것만 같다.

오랜만에 형과 누나 그리고 조카와 함께 근처의 시립 어린이도서관을 찾았다.
오는 길에 공원에서 만난 산수유를 잠시 담아보았다.
겨울동안 출사가 적어서 그런가? 부족함이 많이 느껴진다. ^^
생물학과를 나와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봄을 봄답게 꽃을 맞이하고 생명의 탄생과 약동함을 이전의 내 삶보다 더 충실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을 느낄 때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신비로운 꽃을 가진 현호색


[천마산의 점현호색, 2006]


천남성에 이어 또 하나의 정체불명의 특이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 바로 이 현호색이란 녀석이다. 신비롭고 아름다움 봄꽃이지만 녀석을 가만히 살펴보면 꽃모양이 아주 신기하다. 게다가 잎또한 보통의 잎사귀와는 느낌이 틀리고 잎모양도 독특한 것을 알 수 있다.

식물채집을 해 본 사람은 가느다란 현호색의 줄기 및에 달린 뿌리를 끊어먹기 일쑤다. 이유는 아주 약하기 때문이다. 잘 캐내면 뿌리가 나오긴 하는데 그 생김새가 쌩뚱맞다. 50원짜리만한 구형의 알뿌리가 하나 있을 뿐 잔뿌리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꼭 하나가 아니라 몇 개씩 있는 것도 알았지만 대부분의 종은 하나다. 생김새로보나 녀석의 이름으로 보나 역시나 현호색도 한약재 중 하나인 건 분명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현호색을 초봄에 산에서 찍고 있는데 산행을 하시는 분들이 내게 그 꽃이 뭐냐고 물으시기에 현호색이라고 대답했더니 그게 현호색이냐며 자신은 꽃은 처음보고 한약재로는 동그란 모양인 걸 알고 있다고 하셨다. 나와는 정 반대만 알고 있어서 그 대화로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나누어갖고 완전하게 되었더랬다. ^^ 이렇게 배우는 것이 기억에도 오래 남는단 말이지..

첫 야외실습. 지금도 현호색하면 떠오르는 곳. 유난히 점현호색이 많이 피는 천마산.
그곳이 나의 첫 야외실습 장소다. 그때 처음 현호색을 보았는데 이름을 듣고는 조교님께 물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름이 현호색이예요. 무슨 뜻이 있나요?' 했더니
'글쎄다'
하고만 하신 걸보면 아마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셨던 것 같다.
꽤 여러 해 만나왔지만 여지껏 나도 왜 현호색인지는 모른다. 단지 한약재로 쓰이는 이름이라는 정도밖에는 말이다.

현호색, 점현호색, 들현호색, 댓잎현호색, 빗살현호색, 금낭화, 산괴불주머니, 눈괴불주머니, 염주괴불주머니, 자주괴불주머니와 정확히 이름이 뭔지 모르고 지나간 몇가지... 도감을 보니 그래도 여러 종류를 만나온 듯 하다.
채집이나 사진촬영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녀석들도 다른 식물처럼 어릴때 모양이 다르고 개체마다 다 다르고 계절마다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다. 같은 녀석을 봐도 이렇게 매해 찾아가는 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싶다.

웹디자인을 전공한 형과 2005년엔 처음으로 내가 봄꽃이 만연한 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때 산에 가득핀 처음보는 야생화에 형은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그리고 야생화의 색깔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뒤로 형은 나와 함께 꽃을 찍으로 출사를 종종 다닌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꽃에 대한 열정은 처음이나 오래되었거나 누구에게나 시작되면 매한가지인것 같다. 여기의 열정이라 함은 참 단순하다. 금방 꺼질 관심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그 감동을 남에게도 보여주고 싶고 더 멋지게 자신의 생각과 같이 전해주고 그들의 느낌도 들으면서 공유하고 싶다는 지속적인 관심을 말한다. 더 간단히 말하면 그저 아름답고 남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쩌다보니 식물이 아닌 곤충전공이지만 여전히 난 야생화가 더 좋다. 식물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곳에 찾아가면 녀석들이 있다. 특히나 난 그래서 나무를 더 좋아한다.

봄꽃 중 보라색과 파란색 빛을 띤 녀석으로는 녀석이 제 1후보다.
내게는 말이다. ^^
올해는 어떤 모습일까.
이미 꽃을 피우고 있겠군.

상록수도 낙엽수다.


흔히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중에는 상록수가 많은 편이다. 향나무, 사철나무, 그리고 관엽식물로 관음죽, 벤자민고무나무, 몬스테라 등 사시사철 초록빛의 잎사귀를 볼 수 있는 나무를 보통 상록수라고 한다.

그럼 상록수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대학 대학 2학년부터 후배들에게 종종 묻는 게 상록수는 낙엽이 질까라는 평범한 질문이었다. 몇몇은 늘 상록수라는 말에 더 신경을 쓰며 낙엽이 지면 낙엽수지 상록수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낙엽이 안진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식물을 하나정도는 키우는 곳에서 자란 후배들은 말의 의미를 신경쓰면서도 쉽게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질문 자체에 함정이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즈음 관찰을 제대로 한 후배들의 생각들로부터 상록수가 왜 늘푸른나무라고 불리는지 왜 항상 푸르다고 불리는지 의미를 되짚어보곤 했었다. 오래된 잎을 떨구고 새잎이 그 푸르름을 대신해주며 낙엽수와는 달리 잎이 떨어지면 이듬해 봄에야 새잎이 나오는 것과 달리 일정한 온도만 유지되면 늘 푸르름을 유지하기에 그런 것 같다고 설명을 해준다. 상록수는 영어로 evergreen이라 하고 우리말로 풀어도 늘푸른나무이지만 낙엽수인 동시에 늘푸른나무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류시화님의 '비그치고'라는 짧은 시가 있다.
소개하면



비그치고
- 류시화 -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는 이 대목을 가장 좋아하는 난 이 시를 볼 때마다 상록수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진정한 푸르름은 바로 상록수의 늘 푸르름과 같지 않을까? 살아있는 것들은 늘 변한다. 그럼에도 몇몇은 늘 한결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이나 나무나 그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자신을 늘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그리고 서로를 흔들어줄 동료와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

나중에 단풍이 들고 낙엽을 떨굴때가 되면
낙엽을 즈려밟으며 함께 걸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학명은 꼭 이탤릭체로 써야하나?


생물학을 배우면 꼭 배우게 되는 것이 생물의 이름이다. 그중에서도 일반명이나 국명이 아닌 학술적인 명칭, 학명을 쓰는 방법을 배운다. 간단히 서술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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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은 학술적인 목적으로 같은 종을 달리 표현하여 연구자들간에 오류를 줄이기 위해 제안된 대단히 인위적으로 이름지어진 이름이다.
작성방법은 속명 + 종명 + 명명자의 순서로 적어야 하고 속명과 종명은 이탤릭으로 쓰거나 밑줄을 그어 구분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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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학명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도의 지식일 것이다.
그러나 왜 속명과 종명을 반드시 이탤릭으로 적어야 하는가에 대해 물으면 무어라 대답할 것인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이게 정답일 거다. 즉 하나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학명을 이탤릭으로 쓰거나 밑줄을 긋는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명확한 구분을 위해서 일 것이다. 학명이 라틴어라는 사장어(예전에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죽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알파벳을 기반으로 하는 언어의 문장 속에서 학명을 구분없이 사용하면 얼핏 봐서는 어느 것이 학명인지 쉽게 구분해내기가 어렵다. 영어를 포함한 알파벳 문화권에서 형성된 단어들이 라틴어의 어원으로부터 유래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태가 비슷할 수도 있으며 오타로까지 생각할 만큼 현재 사용하는 언어와 닮아있다. 또한 속명과 종명이외에 명명자부분은 문장내에서 갑자기 이름이 튀어나와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탤릭이나 밑줄이라는 구분을 짓기 위한 규칙을 마련함으로써 문장내에서 이것이 일반 단어가 아닌 생물의 이름임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다.

그렇다면 한글에서는 어떠한가? 한글에서는 특별히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도리어 한글이기때문에 국명이 더 문제가 된다. 간단한 예로 [작은주홍부전나비]를 예로 들면 학명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작은 주홍 부전나비]와 같이 띄어쓰기를 해 원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생물의 이름(국명)은 예외적으로 하나의 고유명사로 취급하여 예외적으로 모두 붙여쓰기를 하여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위의 두가지 경우는 생물이름의 예외처리의 동일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빌어 학명은 꼭 이탤릭체로 쓸 필요은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특히나 한글로 작성된 글에서는 머릿말이나 맺음말에 학명표기에 대해 언급한다면 특별히 이탤릭체를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괄호안에 정자로 넣어도 되고 진한글씨로 써도 되는 문제이다. 다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영문과 동일하게 이탤릭체를 쓰기를 권장하는 것이다.) 한글의 경우는 이탤릭보다는 진한글씨, 다른 글자체와 구분되는 폰트의 사용 등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등으로 표시해주어 주석으로 간단히 설명하거나 구분이 되는 폰트를 사용하여 구분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2007.12월 어울림지기 작성

아까시와 아카시아




아~ 가시~
줄기를 만지면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마는 녀석입니다.
아까시나무로도 쉽게 기억이 되지만 녀석은 역시 아카시아로 발음되는 것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아카시아껌 광고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내서

아카시아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추억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 녀석의 꽃을 산에서 드러누워 따먹다가 집에 식구들에게 따준다며 비닐봉지에
한가득 꽃을 따서 가져온 기억이 납니다.
여름이면 온 산을 뒤덮었던 아카시아

그리고 그 속에는 항상 저와 형, 그리고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느날 아침 집문을 열었을 때 문득 바람에 실려오는 향기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제 여름이 오는구나...
내가 여름을 느끼는 방식이다.

가끔씩 어린 조카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데 몸에 베었는지 조카에게도 조금씩 꽃이 핀 야생화를 가르쳐준다.
녀석이 관심있어 하는 것들만...
작년에 가르쳐 준 꽃마리와 애기똥풀 같은 것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내심 뿌듯하다.
하지만 지난 주말 녀석과 오르면서 조카의 관심은 온통 아까시나무였다.
꽃 자체도 이쁘지만 한 송이를 따서 삼촌은 어릴 때 아카시아꽃을 따서 뒷꽁무니를 떼어내고
꿀을 빨아먹었다고 가르쳐주니 내내 따라한다.
집에 가서 엄마준다며 여러 송이 챙기기까지 한다.

어릴적 조카가 학원에 시달리고 있을 나이에 친구들과 산을 마음대로 오가며 이맘땐 지금보다도
더 아카시아로 가득한 산에 누워 아카시아를 종일 따먹기도 했었는데 종종 요즘엔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려워 아쉽다.

산능선을 지나다가 나들이 나온 가족들을 만났는데 아카시아를 따먹는 조카를 보고
함께 온 아이들에게
"저것봐~ 저 형아도 아카시아꽃 따 먹잖아. 엄마, 아빠도 어릴 때 먹었다니까?"
한다.

요즘엔 공기가 안 좋아져서 따먹으면 안된다고 어른들이 자주 그래서 경험조카 하기 어려운 실정인가보다.
역시나 집에오니 어머니도 손주가 들고 있는 걸 보시고는 요즘엔 먹으면 안된다며 역성부터 내신다. ^^;;
그래도 난 조카와 나들이 갈 때면 피어있는 진달래나 아카시아도 따먹고 위험한 건 알려주고
산을 안전하게 오르는 법을 배우게 해주고 싶다.

산을 올라도 깨끗하지 못한 자연은 올바로 생명을 이해시키기보다 눈으로만 보고 만지거나 먹어서는 안되는 지저분한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전엔 지금보다 아카시아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늦봄 아카시아가 필 때 즈음이면 산 이곳저곳에 벌통이 놓여지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군데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아카시아가 번식력이 너무 왕성해 주변나무의 성장을 막고 재목의 활용도가 적다는 이유로 대량으로 베어지고 다른 여러 나무들이 심어졌다. 그래서 오래전 여름의 시작무렵 진하게 산바람을 타고 내려오던 아카시아의 향기는 간간히만 전해질 뿐이다. 내가 어릴 땐 이맘때면 산에 굳이 안가도 온동네에 아카시아 향기가 가득했었는데 너무 다양화만 외치다보니 그러기위해 희생되어지는 부분도 많아지기 마련인가보다.

아까시나무는 아직도 산에 많은 수종이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가장 많이 한 작업중 하나가 벌목이었는데 부대주변의 진지공사는 물론이고 작업이 엄청 많았다. 아까시나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벌목을 하다보면 가장 성가신 나무가 바로 이 녀석이다. 문제는 가시.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시에 찔리면 아프니까 '아~ 까시'라는 의미의 아까시나무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 건가 싶다. 생물학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종종 내게 질문을 하곤 했던 고참에게 이 나무의 유래를 장난삼아 위처럼 이야기했다가 몰매맞을 뻔 했던 기억도 난다. 장난이었는데. ^^

가시를 비롯해 아까시나무에 대해 안좋은 시선들이 많은 것 같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도 안좋은 기사를 많이 내보냈던 기억이 많이 난다.
최근에서야 사라지고 있는 아까시나무가 밀원식물로 매우 유용한 식물이고 목재도 그동안 활용도를 못찾아서 그렇지
용도에 맞게 쓰면 좋은 목재에 속한다고 한다. 아까시나무는 콩과식물로 주변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는지는 몰라도 척박한 땅에서는 초기에 정착시켜서 땅을 비옥하게 해주는데에 그만인 식물이다. 번식력이 좋고 공해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벌거숭이산에 아까시나무를 심었던 이유는 바로 산을 비옥하게 하고 더불어 밀원식물로서 그만이었기 때문에 심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공로는 뒷전으로 현재의 모습만 보는 것은 좀 안타깝다.

아무래도 이름때문이라면 좀더 친숙한 이름으로 아가씨나무라는 개칭은 어떨까?
순백색의 하얀 꽃송이에도 잘 어울리는 이름일 것 같은데...
그러면 아까시나무의 이미지도 좀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도시에서도 마음껏 아카시아꽃을 먹을 수 있는 때가 언젠가는 다시 오겠지?

수박을 먹고 남은 씨를 심으면 왜 수박이 작게 열릴까?


수박을 먹으면서 집에 정원이나 텃밭 혹은 심을만한 공간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은 장난삼아서라도 수박 먹은 다음 씨를 심어본 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집에서 그런 경험이 있다.
생각보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는 잘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오래전 내가 관심을 가졌던 고구마와 나팔꽃, 감과 고염나무와의 관계와도 관계가 있다. 왜 그럴까?


[우리집 옥상에서 자란 수박, 씨를 심어 난 것이다.]

먼저 고구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고구마는 영양번식형 식물로 특별한 병이 없으면 어미때의 형질이 자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따라서 새로운 자손이 생겼다기 보다는 계속 생명을 이어나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고구마는 꽃이 좀처럼 피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후의 특성상 중부지방에는 꽃을 보기 어렵고 남부지방에 가야 그나마 구경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후이상으로 이전보다 고구마에 꽃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듯 한데 '고구마에 꽃이 피면 천재가 일어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정상적인 우리나라 날씨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해주는 것이 내 아버지의 초등학교 시절 일화이다. 시험문제로 "고구마에는 꽃이 핀다.(O, X)" 이런 OX퀴즈가 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밭일을 하다가 고구마에 꽃을 핀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어서 O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채점결과는 X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해가 되지 않아 밭을 다 뒤져서 고구마꽃을 캐와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이해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군에 있을 때 종종 대민지원으로 지역 농민들에게 봉사를 나가는 일이 있었는데 연세드신 분들에게 여쭈어도 대부분 고구마에 꽃이 핀다는 걸 모르셨다. 제대후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농진청에 질문을 해서 어느정도 답변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고구마는 단일식물로 주로 고구마를 키우는 여름은 꽃을 보기가 어렵다. 꽃을 인위적으로 피우려면 다음 조건을 하나 또는 여러개 만족시켜주면 된다고 한다.
1. 단일조건을 충족시킨다.
2. 환경을 열악하게 해준다.(자라는 땅을 척박하게 해주는 것 등)
3. 접목을 한다.

고구마를 먹기만 하면 되지 왜 꽃타령이냐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유전자기술이 좋지 않을 때는 꽃을 피워 품종간 교배를 통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같은 시대에도 이 방법은 쓰는 곳이 아직 많다고 한다. 앞의 1, 2번은 조금 이해가 가더라도 3번은 잘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자료를 찾던 나도 생소하기만 했으니까 말이다. 방법은 '접목'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나 줄기를 묶는 것과 유사하다. 고구마는 단일식물이며 메꽃과에 속하는 식물로 오래전부터 식용되어와 현재는 원종을 알기 어려운 종이다. 우리가 잘 아는 메꽃이나 나팔꽃은 이 고구마와 한 가족이나 성질이 다르다. 식물이름에 '꽃'이 들어간 것만 봐도 쉽게 꽃을 볼 수 있는 장일식물이기 때문이다. 고구마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이 나팔꽃이란 녀석을 사용한다. 나팔꽃의 밑둥만 남기고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내고 고구마는 밑둥을 제거하고 윗부분을 사용해 두 줄기를 접합시켜주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위는 고구마, 아래는 나팔꽃인 특이한 조합의 식물이 생기나 고구마는 나팔꽃의 성질을 닮아 장일조건에서 꽃을 피운다. 이렇게 해서 꽃을 피운 뒤 꽃가루 교배를 통해 실질적으로 유전적인 조합이 다른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먹는 과일의 많은 것들이 자연에서 나는 원종이 아닌 개량된 품종이라는 사실은 숲을 다녀본 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자연상태에서 나는 대부분의 과일이나 열매는 대부분 크기가 작고 맛 또한 현재 먹고 있는 것들에 비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과일중 배와 감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품종이 자연종과 유전적인 조성이 다른 새로운 품종이 되었다면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씨앗을 심으면 현재 품종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가?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해왔고 아주 오랫동안 이 사실을 믿어왔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의 씨를 심으면 감나무가 되지 않고 고욤나무라는 감나무의 자연종이 된다. 배나무 역시 심어서 정성스럽게 키워도 우리가 먹었던 배가 열리지는 않는다. 이미 아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두 접목을 통해서 과실을 키우고 맛을 좋게하는 방향으로 개량되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유전교배가 아닌 접목을 통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키워진 것이므로 실제로 유전적인 구성은 원종 그대로인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가지만 [욕망의 식물학]이란 책을 보면 사과나무에 대한 이 이야기가 재미있게 적혀있다. 오래전 읽은 것이라 기억이 잘 안나지만 사과나무는 접목이외에도 꽃가루받이를 통해 유전적인 교배를 해도 원종으로 돌아오려는 경향이 있어 세대를 반복할 수록 원종에 가까워지려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유전코드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관성과도 같은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두 가지 이야기를 앞서 한 것은 바로 별개의 이야기로 보이는 이 현상들이 모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수박이나 참외를 먹고 집에서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실감하는 것. 싹이 트고 꽃피고 열매까지 달리기 시작하면 누구나 한번쯤 집에서 키운 수박이나 참외를 먹어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관찰하고 실망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 얼마전에야 나도 수박이 접목을 해야만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큰 수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먹을 줄만 알았지 내가 먹는 것이 어떻게 자라고 크는 줄 모르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뿌려진 씨앗으로 난 참외나 수박을 개구리참외 개구리수박이라고 부른다. 잘 익었는지 몰라 우물쭈물 다음에 다시 와서 보면 개구리가 튀어 도망가듯 감쪽같이 누군가 이미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 듯 하다.

조카에게 가끔씩 집에서 먹는 식품들이 어떻게 나는지 물어보면 재미있다. 밥을 먹으면서 과일을 먹으면서 이게 어디에 달리는 건지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때 즈음 문득 밥먹으면서 장난삼아 밥으로 먹는 쌀이 어디서 열리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잘 모른다기에 쌀나무에서 열린다고 장난을 치니 그대로 믿었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우리가 먹는 것이 어떻게 길러지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참을 다른 이야기만 한 듯 하다. 원래 이야기로 돌리면 수박은 위에서 언급한 고구마와 나팔꽃의 경우와 비슷하다. 윗부분은 수박, 아랫부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박이다. 모종으로 심은 뒤 어렸을 때 접목한 뒤 접목이 잘 되고 안착되면 심는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박 접목하기'라고 치면 자료도 많다. 그런데 난 이제야 알았다. 생물을 공부했지만 늘 먼데서만 소재를 찾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이 모두 생물이고 그 안에 더 많은 이야기와 생물학이 들어있음을 자주 느끼곤 한다.

- 이 글은 2008.5 한터울(http://www.hanteoul.wo.ro)에 올린 글을 다시 수정한 것입니다.

불교의 생명가치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알려진 아마도 모든 종교의 교리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되었는데 그 해답을 준 한마디 말은 작년에 쓴 내 글에도 언급했듯이 한 스님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였다.

'스님도 살충자입니다'

생명관에 대한 내 고민은 내가 관심있어 하는 야생화와 곤충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부터이다.
생물학과에 들어와 도리어 훨씬 더 많은 생명을 만나고 더 좋아하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더 많은 생명들을 죽이고 있는 날 발견한 순간 그 회의감이란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무엇인가...
종교에서 말하는 살생하지말라는 가르침도 머리속을 수없이 스쳐갔지만 단순히 죽이지 말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했고 내겐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늘 있었다.

연구용이라고는 하지만 그 명분아래 난 내 경험들과 지식들이 그들을 잡아서 죽이기 위한 데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러고 보면 포충망으로 먼저 잡고 보았지 천천히 다가가 관찰하고 오래도록 지켜본 적이 너무 없었다.

그러다 만난 100년전 인물.. 파브르
어느 책에서 그의 노년의 사진을 보고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자라기보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초라한 농부의 모습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시간 야외에서 내려쬐는 햇볕에 그을리고 쪼글쪼글해진 그의 왜소하고 작은 체구와 얼굴은 그에 대한 환상을 깨고도 남음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생명관은 나를 감동시켰고 채집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관찰기는 그가 내가 그동안 짧게밖에 경험하지 못한 관찰이라는 분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관찰내용을 풀어내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사람들의 어린시절 자연의 신비함과 오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발자취는 충분히 내게 있어 어울림의 모습의 표본중 하나라고 해도 될 성싶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줄 아는 것... 그게 관찰이다.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고 주관을 줄여나가는 것... 책의 지식만큼이나 투자해야할 자연의 참고서를 읽는 방법이 관찰이 아닌가 싶다. 관찰할 줄 아는 힘이 내겐 아직 부족한 듯 싶다. 그리고 생물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생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온 생각이다. 생명자체가 아닌 생명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모두 해당된다.

불살생(不殺生)이란 의미가 살생하지마라의 의미가 아닌 나는것도 죽는것도 아닌 초월하라는 의미였다는 것은 놀라움이었다. 책이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나름대로 어느정도 의미를 알게 되었음즈음 성수스님의 말씀은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신다.
'스님도 살생자입니다.'
를 비롯해 그동안 나의 살충.

개인적인 해석의 잘못이었지만 불교에도 생명존중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사상의 진정한 의미는 아마도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그 마음가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 그 마음가짐, 즉 내 가치관이 올바로 세워지지 않았다면 내 행위 역시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 오래전에 철학에서 과학이 나왔는지 이젠 알겠다. 또한 오래전 형식상 철학이란 분야에서 과학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하나이며 따로 생각하게 되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충분히 알겠다.

비단 불교뿐만이 아니라 카톨릭이나 기독교, 이슬람교 등등 그들의 생명에 대한 마음가짐은 종교를 떠나 대동소이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생명에 대한 생각 하나


2007년 '어울림' 홈페이지를 운영했을때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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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카는 올해로 8살이다.
가끔씩 데리고 나가면 내 나이도 있는지라 내가 일찍 결혼이라도 했는지 알고 오해를 많이 받게 되지만
태어나서부터 줄곧 보아온지라 미운 정 고운정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지만 내가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닐때 종종 집에서 표본을 만들거나 표본을 정리하면 와서 구경도 하고 그랬다. 때때로 어린 녀석을 데리고 나가서 채집망과 채집모자를 씌워주고 잡아보게도 하곤 했었다. 하지만 녀석에게 잡아서 죽이고 표본만드는 방법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대신 관찰하고 그 다음은 놔주도록 한다. 하지만 녀석은 커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힘이 강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 같다. 실제로 야생에서 사람을 공격할 만한 커다란 육식포유류가 사라져가면서 실제로 산에 가면 사람보다 강한 생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로는 커다란 자연계안의 한없이 약하고 작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보다 10년 위 10년 아래의 사람들과 주로 지내다보니 자주 잊고 있었던 것을 조카를 통해 느끼게 되는데 그건 내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는 생물과 조카와 그리고 나 사이에는 몇 번의 사건이 있었다.
어릴 적 말을 잘 못알아듣는 녀석은 잠들었다가 깨어나 엄마나 할머니가 없으면 울어대곤 했다. 삼촌인 내가 있어도 녀석은 막무가내로 울곤 했다. 내가 봐주는 날이면 곤혹을 겪기도 했는데 한번은 우리집에서 잘 내려다보이는 비둘기집을 가리키며 녀석의 호기심을 그쪽으로 돌려본 적이 있다. (집 건너편에 비둘기가 이웃집 베란다 구석에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는 곳이 있는데 우리집 계단에서 잘 보인다.) 비둘기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마는 조카를 달래기 위해 그것들을 보여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니 녀석이 알아들었는지 한동안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었었던 것 같다. 흔히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도 적용되는 듯 싶다.

내가 조카에게 그간 가지고 있던 표본들을 보여준 것은 더 커서부터인데 경험상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싶어하는 것을 잘 알기에 주의부터 단단히 주고나서야 보여주었다. 나비며 하늘소, 사슴벌레 등등 여러가지를 보여주고 이름도 알려주었었다. 종종 집에서 곤충을 키울때면 녀석에게도 만져보게 하거나 먹이를 주게 했었다. 기억으로 녀석이 가장 무서워했던 녀석은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다. 생김새가 커다란 집게를 달고 있는 녀석들이라서 그런지 무서웠나보다. 사슴벌레라고 알려주니 얼마간 잘 부르다가 내 졸업식날 와서 실험실에 들어와서 사슴벌레 표본을 보더니 당당히 이러는 것이다.

"삼촌~ 집게벌레~~"

그래 자랑스럽다. ^^; 그렇게 알려줘도 네게는 집게가 더 맘에 들었나 보구나. 뭐 이름이 중요하겠냐. 네가 바라보는 정직한 시선이 더 중요한 거겠지.

위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녀석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강한 존재라는 것을 안다. 나비나 메뚜기, 무당벌레는 잡아도 놓아줄 줄 알면서도 집으로 들어온 개미는 가차없이 죽인다. 그 모습을 보고 왜 죽이느냐고 했더니 딱히 이유를 대지 못한다. 개미는 징그럽지도 않고 그리 협오감을 주지도 않는데다가 동화에도 자주 나와 어느정도는 친근감도 있을터인데 얼마 후 녀석이 말한 대답은 역시나다.

"우리집에 들어와 우리 식구들이 먹을 것을 먹으니까 이것들은 죽여도 되요"
이런 식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닭이나 돼지도 죽이고 많은 식물들도 죽이고 그러는데? 그럼 사람들은 더 나쁜 거네?"

조카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

조카와의 대화에서 뒤돌아서 내가 느끼는 것은 생명에 대한 소중함과 처음 채집을 다니면서 생명을 사랑하기 위한 공부가 아닌 죽이는 공부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을 느꼈을 때와 비슷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었다.

한번은 백담사 부근에서 형과 같이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앞서 산행하시는 분들 중 한 분은 백담사나 근처 산사의 스님이신 것 같았다. 바로 뒤를 따라 걷고 있던 터라 형과 나는 대화를 우연히 들을 수 있었다. 대화중 스님은 '스님들도 살충자입니다.'라고 하시는 이야기를 하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내겐 그 대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늘 궁금했던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살인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생명이란 비단 포유류나 양서파충류와 같이 크고 움직이는 동물뿐 아니라 작은 곤충이며 식물도 모두 해당되는데 스님들은 육식만을 피하고 식물은 먹는데 아무런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스님들이 얼마나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내 질문이 잘못된 방향이었음을 지금은 어느정도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식물에 대한 생명관이 왜 없을까.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 늘 변화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식물인 것을 왜 오래전 사람들도 몰랐을까. 분명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육식만을 피하라고 한 것은 피를 가진 사람과 가장 비슷한 생물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의 선남선녀들이 식물을 꺽을 때의 마음과 동물을 죽일때의 마음이 같을까? 변화무쌍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식물에 대한 생명의식은 당장 눈앞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과는 달리 많이 약하다. 그들이 경계한 것은 생명에 대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얻는 마음을 중요시 여겼다는 생각이다. 육식을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이상으로 죽이고 쌓아두고 악한 마음으로 살생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한 것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래는 언젠가 지하철에서 본 글귀다.

- 선택의 갈림길에서

양개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습니다.
"지금 막 밖에서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해줘야 합니까. 그냥 내버려둬야합니까?"
"구해준다면 대자연의 질서를 깨뜨리는 것이고,
구해주지 않는다면 한 생명을 져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자연의 질서도 깨뜨리지 않고,
생명도 져버리지 않는 길을 택해야지."
"?"

이 대화는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행위에 있지 않고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살기 위해 먹고 죽이는 것은 섭리이고 생태계의 이치다.

사람 또한 그러하다. 모든 불자들이 육식을 안하는 것은 아니며 여느 생명체와 같이 욕망대로 먹고 살아간다. 그러나 많은 성직자들이 육식을 금하고 있다. 금하기 보다는 절제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수많은 나비를 죽이고 있을 때 마음 속에서 시작된 회의감이었다고 기억하는 그 느낌은 바로 위의 대화 속에 답이 있다. 내 마음 속에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큰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백담사의 한 스님의 이야기가 그래서 내게는 아주 재미있게 들렸다. 들을 때에는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재미있게만 들었다가 후에 생각해보니 무슨 의미였는지 알겠다. 조카의 행동과 말 그리고 나와의 대화 속에서도 느끼는 바가 있다. 지금은 왜 내가 어울림을 화두로 잡았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공부를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무언가를 바로 얻기 위해 하는 공부도 분명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내 마음을 비추어가면서 배워가는 것들도 아주 많다는 것을 말이다. 기약없는 시간 속에서 하는 공부라는 것은 가끔은 언제나 해답을 얻을까도 싶지만 그 해답조차도 그때뿐이며 더 지나면서 또 다른 해답을 얻을 수 있음은 더욱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말썽도 늘고 내게 혼나는 때도 늘어가지만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길가다가 집주변에서 놀다가 모르는 곤충이나 벌레가 보이면 늘 나를 부르고 거기까지 데려간다. 더 크면 산에 데리고 다니며 이런 저런 것들을 관찰하고 함께 공부하고 싶다. 물론 조카가 그럴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분명 조카에게 내가 배울 것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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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6.16 어울림지기 씀
2009.5 고쳐씀

5월의 봄꽃


여름같은 날씨가 계속되는 5월이다.
종종 내리는 봄비는 가뭄이 유난히 심하다는 올해 단비인 듯 하다.
지난주 아까시나무가 꽃 핀 것을 보니 예년보다 빠르다는 느낌이다.
보통 내가 사는 곳에서는 5월말경에나 산에서 아카시아향기가 산바람을 타고 내려오는데 올해는 더 빠른 듯 하다.
참등을 찍던 날 도서관에 나들이온 중년 부부께서 어린아이마냥 좋아하시는 것을 보니 봄의 꽃축제는 굳이 축제로 만들지 않아도 이전부터 찾는 이들은 누구나 축제의 세계로 불러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쪽에는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무시무시한 생울타리를 만든 것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멘트로 만든 콘크리트 담장에 비하면 정겹기까지 했다. 탱자나무꽃이 한 가득 필 때면 가시돋힌 탱자나무울타리도 하얀색 꽃으로 장관이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되면 꼭 보고 싶다.

탱자나무


신나무


참등

논문의 저자권


개인적으로 논문을 여러편 낸 것은 아니지만 논문의 저자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방을 전공하면서 신종발표과 기록종의 재고를 하면서 2편의 논문을 낸 적이 있는데 당시 여러편의 논문을 참조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석사2년과 졸업후에는 혼자 2년간 추가로 진행한 신종발표 논문의 경우가 더 그랬는데 논문의 저자는 내가 1저자가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교신저자의 이메일주소나 연락처만이 남고 내 경우 아무런 연락처도 메일에 남길 수 없었다. 이미 내 경우 당시 석사논문을 정리한 홈페이지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논문을 작성한 후 논문에 대한 문의가 있으면 메일등으로 받아보아 다른 연구자의 의견을 받아보고 싶어 심사과정중에도 계속 내 메일주소를 추가했으나 매번 교신저자의 연락처만 남기고 빠졌다. 해당 학회의 최근 논문들을 보니 저자의 연락처는 교신저자위주로 남겨지고 있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기본적인 아웃라인이 그렇다고 해도 모든 저자의 이메일주소를 모두 남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실제로 국내의 경우나 국외의 경우에 모든 저자의 연락처를 남기는 경우도 많았다. 예전에야 연락처가 없는 경우가 많았겠지만 지금은 이메일을 비롯해 여러방식의 연락방법이 있는데 아직도 일부만 연락처를 표기하는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논문을 낸 지 3년이 지나가지만 논문에 대해 연구자들의 의견은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영어로 작성된 석사논문을 한글로 최대한 풀어 만든 홈페이지를 통해 몇몇 분들에게 도움이 된 점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국립민속박물관의 '박물관과 유해생물의 관리' 책자의 곡식좀나방과 관련부분에 대한 자문 및 내용작성에 참여할 수 있었고 종종 실무자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논문의 저자권에 대한 한국과총의 글을 읽었는데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에서도 저자권에 대해서 문제가 많은 듯 하다. 분야마다 적용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고 문제가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2006년 이후 국내의 여러 조사에서 나타난 연구자들의 가장 민감한 연구윤리문제 중 하나가 “부당한 논문저자표시”라고 한다. 종종 뉴스에서나 기사에서 본 바로는 일부에서라고 하는데 연구윤리면에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연구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불만은 점점 쌓이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논문의 저자권에 대해서 크게 관심은 없다. 단지 내가 작성한 그리고 앞으로 작성하게 된다면 다른 연구자의 내 연구에 대한 질문을 받거나 문제점은 지적받고 싶다. 석사논문을 영어로 작성해 국내에서는 전공자나 실무자가 아니면 쉽게 읽을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그래서 졸업후 몇개월동안 정리해 '한국의 곡식좀나방과'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시간이 나는대로 우리말로 순화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한다. 물론 소수이겠지만 대학원때 연구한 분야가 출판된 논문뿐 아니라 석사논문도 필요한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이기를 바란다.

논문의 저자권표시는 학회마다 다르다고 알고 있다. 보통은 이름의 순서에 따라 기여도를 나타내어 저자이름이 앞에 있을수록(제1저자, 제2저자...) 논문에 대한 기여도가 가장 높다. 순서에 무관히 교신저자를 제1저자로 취급하는 학회지도 있다. 논문의 저자표시에 대해서는 연구윤리문제로 논의가 계속되는 민감한 문제이다. 어느 범주까지를 저자로 할 것인지부터 기여도를 어떤 기준에 의해서 순서를 정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논문의 저자는 실제적으로 논문작성에 기여도가 충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논문의 제1저자는 다음의 3가지 조건에 만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논문에 대한 기여도가 가장 커야한다. 당연한 거지만 가장 중요한 요건이므로 첫번째요건이다.
두번째, 실제로 논문을 작성하고 연구결과를 정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세번째, 논문작성시 사용한 연구결과물의 원본자료 및 연구노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1저자를 제외한 이외의 저자는 프로젝트 성격의 논문이라도 기여도순에 따라 제3저자까지만 표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재료 및 표본의 제공자, 내용검토자는 논문의 저자라고 하기 어렵고 사사(acknowledgements, 감사의 글)에 포함시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종종 논문의 저자로 매우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논문에서 제3저자 이외에는 논문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는 논문이 연구자들에게 경력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다.

논문이 인쇄소를 통해 출판되던 시절에는 저자의 연락처가 소속기관명, 전화번호, 팩스 등으로 표시되었지만 최근에는 웹을 통해 전자문서로도 많이 배포되므로 이메일이 많이 표기되는데 종종 교신저자의 연락처만 표기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해외의 여러 학회지를 봐도 논문저자의 소속과 연락처, 이메일을 모두 밝히는 경우가 많다. 논문은 단순히 경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연구결과를 공개해 논문에 대한 타 연구자들의 의견을 받고 상호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방식이다. 저자가 여러명인 경우 모든 사항에 대해 한 저자가 다 잘 알고 있기는 어렵다. 따라서 논문에 대해 의견이 있거나 질문이 있는 경우를 위해서 모든 저자의 연락처가 기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