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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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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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먹고 남은 씨를 심으면 왜 수박이 작게 열릴까?


수박을 먹으면서 집에 정원이나 텃밭 혹은 심을만한 공간이 있는 이라면 한번쯤은 장난삼아서라도 수박 먹은 다음 씨를 심어본 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집에서 그런 경험이 있다.
생각보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에는 잘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것인데 오래전 내가 관심을 가졌던 고구마와 나팔꽃, 감과 고염나무와의 관계와도 관계가 있다. 왜 그럴까?


[우리집 옥상에서 자란 수박, 씨를 심어 난 것이다.]

먼저 고구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고구마는 영양번식형 식물로 특별한 병이 없으면 어미때의 형질이 자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따라서 새로운 자손이 생겼다기 보다는 계속 생명을 이어나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고구마는 꽃이 좀처럼 피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기후의 특성상 중부지방에는 꽃을 보기 어렵고 남부지방에 가야 그나마 구경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후이상으로 이전보다 고구마에 꽃을 자주 볼 수 있게 된 듯 한데 '고구마에 꽃이 피면 천재가 일어난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정상적인 우리나라 날씨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다.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해주는 것이 내 아버지의 초등학교 시절 일화이다. 시험문제로 "고구마에는 꽃이 핀다.(O, X)" 이런 OX퀴즈가 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밭일을 하다가 고구마에 꽃을 핀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어서 O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채점결과는 X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해가 되지 않아 밭을 다 뒤져서 고구마꽃을 캐와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이해를 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군에 있을 때 종종 대민지원으로 지역 농민들에게 봉사를 나가는 일이 있었는데 연세드신 분들에게 여쭈어도 대부분 고구마에 꽃이 핀다는 걸 모르셨다. 제대후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농진청에 질문을 해서 어느정도 답변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고구마는 단일식물로 주로 고구마를 키우는 여름은 꽃을 보기가 어렵다. 꽃을 인위적으로 피우려면 다음 조건을 하나 또는 여러개 만족시켜주면 된다고 한다.
1. 단일조건을 충족시킨다.
2. 환경을 열악하게 해준다.(자라는 땅을 척박하게 해주는 것 등)
3. 접목을 한다.

고구마를 먹기만 하면 되지 왜 꽃타령이냐 생각하는 이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유전자기술이 좋지 않을 때는 꽃을 피워 품종간 교배를 통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같은 시대에도 이 방법은 쓰는 곳이 아직 많다고 한다. 앞의 1, 2번은 조금 이해가 가더라도 3번은 잘 이해가 안 갈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자료를 찾던 나도 생소하기만 했으니까 말이다. 방법은 '접목'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나 줄기를 묶는 것과 유사하다. 고구마는 단일식물이며 메꽃과에 속하는 식물로 오래전부터 식용되어와 현재는 원종을 알기 어려운 종이다. 우리가 잘 아는 메꽃이나 나팔꽃은 이 고구마와 한 가족이나 성질이 다르다. 식물이름에 '꽃'이 들어간 것만 봐도 쉽게 꽃을 볼 수 있는 장일식물이기 때문이다. 고구마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이 나팔꽃이란 녀석을 사용한다. 나팔꽃의 밑둥만 남기고 줄기를 비스듬히 잘라내고 고구마는 밑둥을 제거하고 윗부분을 사용해 두 줄기를 접합시켜주는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위는 고구마, 아래는 나팔꽃인 특이한 조합의 식물이 생기나 고구마는 나팔꽃의 성질을 닮아 장일조건에서 꽃을 피운다. 이렇게 해서 꽃을 피운 뒤 꽃가루 교배를 통해 실질적으로 유전적인 조합이 다른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먹는 과일의 많은 것들이 자연에서 나는 원종이 아닌 개량된 품종이라는 사실은 숲을 다녀본 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자연상태에서 나는 대부분의 과일이나 열매는 대부분 크기가 작고 맛 또한 현재 먹고 있는 것들에 비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과일중 배와 감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 품종이 자연종과 유전적인 조성이 다른 새로운 품종이 되었다면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씨앗을 심으면 현재 품종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 당연한가?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해왔고 아주 오랫동안 이 사실을 믿어왔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감의 씨를 심으면 감나무가 되지 않고 고욤나무라는 감나무의 자연종이 된다. 배나무 역시 심어서 정성스럽게 키워도 우리가 먹었던 배가 열리지는 않는다. 이미 아는 이들도 있겠지만 모두 접목을 통해서 과실을 키우고 맛을 좋게하는 방향으로 개량되어져 온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유전교배가 아닌 접목을 통해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향으로 키워진 것이므로 실제로 유전적인 구성은 원종 그대로인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빗나가지만 [욕망의 식물학]이란 책을 보면 사과나무에 대한 이 이야기가 재미있게 적혀있다. 오래전 읽은 것이라 기억이 잘 안나지만 사과나무는 접목이외에도 꽃가루받이를 통해 유전적인 교배를 해도 원종으로 돌아오려는 경향이 있어 세대를 반복할 수록 원종에 가까워지려는 경향이 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오랜 진화의 역사 속에서 현재의 유전코드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관성과도 같은 경향이라고 생각된다.

두 가지 이야기를 앞서 한 것은 바로 별개의 이야기로 보이는 이 현상들이 모두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수박이나 참외를 먹고 집에서 키워본 사람은 누구나 실감하는 것. 싹이 트고 꽃피고 열매까지 달리기 시작하면 누구나 한번쯤 집에서 키운 수박이나 참외를 먹어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직접 관찰하고 실망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 얼마전에야 나도 수박이 접목을 해야만 현재 내가 알고 있는 큰 수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먹을 줄만 알았지 내가 먹는 것이 어떻게 자라고 크는 줄 모르는 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연히 뿌려진 씨앗으로 난 참외나 수박을 개구리참외 개구리수박이라고 부른다. 잘 익었는지 몰라 우물쭈물 다음에 다시 와서 보면 개구리가 튀어 도망가듯 감쪽같이 누군가 이미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인 듯 하다.

조카에게 가끔씩 집에서 먹는 식품들이 어떻게 나는지 물어보면 재미있다. 밥을 먹으면서 과일을 먹으면서 이게 어디에 달리는 건지 물어보면 잘 모르는 것이 보통이다.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때 즈음 문득 밥먹으면서 장난삼아 밥으로 먹는 쌀이 어디서 열리냐며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잘 모른다기에 쌀나무에서 열린다고 장난을 치니 그대로 믿었었다.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우리가 먹는 것이 어떻게 길러지고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참을 다른 이야기만 한 듯 하다. 원래 이야기로 돌리면 수박은 위에서 언급한 고구마와 나팔꽃의 경우와 비슷하다. 윗부분은 수박, 아랫부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박이다. 모종으로 심은 뒤 어렸을 때 접목한 뒤 접목이 잘 되고 안착되면 심는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수박 접목하기'라고 치면 자료도 많다. 그런데 난 이제야 알았다. 생물을 공부했지만 늘 먼데서만 소재를 찾고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가 늘 먹는 음식이 모두 생물이고 그 안에 더 많은 이야기와 생물학이 들어있음을 자주 느끼곤 한다.

- 이 글은 2008.5 한터울(http://www.hanteoul.wo.ro)에 올린 글을 다시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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