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도 낙엽수다.
흔히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중에는 상록수가 많은 편이다. 향나무, 사철나무, 그리고 관엽식물로 관음죽, 벤자민고무나무, 몬스테라 등 사시사철 초록빛의 잎사귀를 볼 수 있는 나무를 보통 상록수라고 한다.
그럼 상록수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은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대학 대학 2학년부터 후배들에게 종종 묻는 게 상록수는 낙엽이 질까라는 평범한 질문이었다. 몇몇은 늘 상록수라는 말에 더 신경을 쓰며 낙엽이 지면 낙엽수지 상록수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낙엽이 안진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그런 식물을 하나정도는 키우는 곳에서 자란 후배들은 말의 의미를 신경쓰면서도 쉽게 대답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질문 자체에 함정이 있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럴 즈음 관찰을 제대로 한 후배들의 생각들로부터 상록수가 왜 늘푸른나무라고 불리는지 왜 항상 푸르다고 불리는지 의미를 되짚어보곤 했었다. 오래된 잎을 떨구고 새잎이 그 푸르름을 대신해주며 낙엽수와는 달리 잎이 떨어지면 이듬해 봄에야 새잎이 나오는 것과 달리 일정한 온도만 유지되면 늘 푸르름을 유지하기에 그런 것 같다고 설명을 해준다. 상록수는 영어로 evergreen이라 하고 우리말로 풀어도 늘푸른나무이지만 낙엽수인 동시에 늘푸른나무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에 류시화님의 '비그치고'라는 짧은 시가 있다.
소개하면
비그치고
- 류시화 -
비 그치고
나는 당신 앞에 선 한 그루
나무이고 싶다.
내 전생애를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푸르름이 아주 깊어졌을 때쯤이면
이 세상 모든 새들을 불러 함께
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는 이 대목을 가장 좋아하는 난 이 시를 볼 때마다 상록수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진정한 푸르름은 바로 상록수의 늘 푸르름과 같지 않을까? 살아있는 것들은 늘 변한다. 그럼에도 몇몇은 늘 한결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이나 나무나 그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자신을 늘 푸르게 푸르게 흔들고 싶다.
그리고 서로를 흔들어줄 동료와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
언제나 푸르름을 유지할 수는 없겠지.
나중에 단풍이 들고 낙엽을 떨굴때가 되면
낙엽을 즈려밟으며 함께 걸을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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