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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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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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친구야, 부탁이 하나 있어.

- 우종영 님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안녕,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매일 아침 거리에서, 집 뜰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도 서로 안부 인사조차 나눌 시간이 없으니까. 나랑 눈 맞출 시간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그렇게 바쁜 거니?

예전에는 길을 가다가도 내 그늘에 들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이젠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내 나름의 신호를 보내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언제나 해바라기의 짝사랑으로 끝나곤 한단다. 외면 당한 마음은 씁쓸하지만 언제고 다시 내게 눈을 돌려주길 말없이 기다릴 밖에.

얼마 전 친구들과 내가 느낀 이런 아쉬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마침 그 때 너희 사람들이 만들어 낸 나무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그래도 우릴 잊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에 처음엔 무척 반가웠단다. 너도 잘 알거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던가.

나무와 한 소년이 있었지. 소년은 매일 나무에게로 와 나무가 떨군 잎들로 왕관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나무 기둥에 올라가 그네도 타고, 또 열매를 따먹기도 했어. 놀다 지치면 나무 그늘에 자기도 하면서 말이야.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더군. 그 사이 소년은 나이를 먹어갔고 나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돈이 필요하다며 나무를 찾아왔고 나무는 고민 끝에 자기 가지에 달린 사과들을 모두 소년에게 주었단다. 사과들을 등에 한 짐 지고 떠나는 소년을 보며, 그래도 나무는 행복해 했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는 떠나 있던 소년이 다시 돌아와 이번엔 집이 필요하다고 했어. 고민하던 나무는 자신이 가진 나뭇가지들을 모두 내어 주고 행복해 했지.

그 뒤 늘그막에 다시 나무를 찾아온 소년은 나무 기둥까지 베어 낸 뒤 배를 만들어 떠나 버렸지. 나무는 그래도 자신에게 무언가 줄 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행복을 느꼈고.

마지막 장면이던가. 편히 쉴 곳을 찾아 돌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이미 잘려 나간 몸뚱아리를 곧게 펴 앉을 곳을 마련했단다. 소년은 나무가 내어 준 나무 밑둥에 앉아 지친 몸을 쉬었지. 이미 늙어 버린 소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무는 행복해 했단다.....

그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렇게 끝이 났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구나. 어느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송두리째 내 놓으면서도 그것으로 행복해 할 수 있는 태도를 본받고 싶다고 했다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켠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더구나. 과연 그 나무가 정말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말이야.

나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고, 울고 웃는 감정이 있으며, 누군가 톱이라도 대면 아파서 비명을 지른다는 걸 너도 잘 알 거야. 그렇게 살아 숨쉬는 나무가 누군가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진 것을 송두리째 내어주고, 마지막으로 밑둥이 되면서까지 과연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무가 주는 걸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뿌리만 남겨 둔 채 베어버리는 소년은 행복했을지 몰라. 그러나 소년은 그렇게 모든 걸 내어 준 나무의 마음을 절대 알지 못했을 거야. 그렇게 다른 곳만 바라보는 소년을 대하며 나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그 나무가 흘린 보이지 않는 눈물이 느껴진다. 결국 "나무가 행복했다"고 말하는 건 사람의 눈,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잘못된 편견이지 않을까 싶어.

하지만 사실 내게도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시절은 있었지. 사람들 입에서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애틋한 전설로 회자되던 시절이었지.

은행나무만 해도 그래. 이 땅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 대부분이 바로 은행나무와 관련된 것이지. 양평의 용문사라는 절에 있는 천 년된 은행나무는 그 한 그루에 무수한 전설을 담고서 사람들로부터 애정과 관심을 받아왔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그 은행나무는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라의 여러 가지 변고가 있을 때마다 신비한 일을 행했다고 하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그 은행나무는 살아 숨쉬는 시간들이 크고 작은 행복들로 채워졌을거야.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이렇게 사람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전설들을 갖고 있는 나무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 비단 큰 나무뿐만 아니라 작고 하찮은 풀 한 포기까지 어느 하나 사연 없는 게 없단다.

시어머니 심술 덕에 굶어 죽은 며느리가 밥풀 물고 있는 모양새로 다시 태어난다는 '며느리밥풀'부터 시작해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낸 뒤 바닷가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죽어 붉은 꽃으로 피어났다는 '백일홍', 추운 겨울 큰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죽은 동자승이 다시 태어났다는 '동자꽃'까지 그 이야기도 참 다양하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그 하나 하나엔 맑고 소박한 사람들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단다.

하나같이 애절하면서도 애정이 가득 베어있는 전설들을 보면 옛날에는 너희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과 관심이 없었더라면 아주 작고 볼품없는 꽃에 이르기까지 그런 전설들이 생겨 날 리 없겠지.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그런 전설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 같아.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 나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일 거야.

내가 다른 얘기 하나 더 해줄까? 유리나가빈이란 사람이 쓴 [겨울 떡갈나무]란 소설 이야기야.

어떤 한 마을에 안나 바실리예브라는 선생님이 있었어. 부임한 지 이 년밖에 안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지. 그러나 그녀에겐 골치덩어리 학생이 한 명 있었어. 지각 단골생 서브스킨이라는 아이. 참다 못한 그녀는 어느 날 서브스킨을 교무실로 불러 지각하는 이유를 물었어. 그러자 서브스킨이 대답했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매일 1시간 전에 집에서 나오거든요." 그녀는 서브스킨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서브스킨과 등교 길을 함께 나섰어.

서브스킨은 학교 뒷문에서 시작되는 오솔길로 선생님을 안내했단다. 그 오솔길은 주위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숲 속이었어.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는 그 곳은 새들이 재잘거리면서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들판엔 토끼와 사슴 발자국이 찍혀 있었지.

서브스킨과 함께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안나 선생님은 숲의 고요 속에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놀라움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단다.

오솔길은 산사나무 주위를 휘돌며 이어져 있었고, 숲은 거기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 커다란 떡갈나무가 새하얀 옷을 입고 우뚝 서 있었어. 떡갈나무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은 거울들로 반짝였는데 그 맑은 거울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걸 보고 그녀는 나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그런 그녀에게 서브스킨은 나무 밑둥을 파 고슴도치를 살짝 보여주기도 하고, 또 작은 굴 속에서 잠자는 개구리, 투구벌레, 도마뱀, 무당벌레들을 보여 주기도 했어. 그러는 동안 학교에서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지.

그제서야 그녀는 서브스킨에게 말했어.

"멋진 산책을 시켜 줘서 고맙구나. 앞으로 계속 이 길을 통해 학교를 다녀도 좋아."

서브스킨은 그 길을 걸어 다니면서 자연의 신비하고 경이로운 모든 들을 접했을 거야.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무에 대한 사랑,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배웠을 거고, 아마도 안나 선생님은 그것의 소중함이 학교 수업만큼이나 소중하다고 생각했기에 서브스킨에게 계속 그 길로 걸어도 좋다고 했겠지.

그런데 있잖아.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갑자기 지금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세상이 두려워졌어. 우리들에 관한 전설이 사라지는 이 세상이 말이야.

자연스럽게 나무와 멀어진 사람들, 한가롭게 나무와의 추억을 만들 시간이 어디 있냐고 따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갈수록 각박하고 황량해지는 이유를 발견하는 건 나뿐일까?

네게도 서브스킨처럼 나무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거야. 그리고 그때의 추억들은 어느 순간 네가 각박해지고 메말라가는 것을 막아주는 버팀목이 될 테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전설들이 사라지는 지금의 현실이 참 안타깝고 슬프다.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에 이름없는 풀 한 포기, 나무 하나에도 새로운 전설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편지의 마지막을 부탁으로 끝내는 게 미안하지만 너는 그래도 나의 벗이라고 생각하기에 염치 불구하고 얘기한다. 너도 알 거야. 서울 비원 앞 플라타너스에 아이들 이름이 적힌 명패가 하나씩 달려 있다는 걸 말야. 적어도 그 나무들은 그 명패의 주인공에게만큼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살아가는 동안 그 나무와, 그 나무에게 자신의 이름을 준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둘만이 공유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겠지. 서로를 친구라고 여기며 말이야.

나는 전설이라는 게 꼭 크고 거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만 우리가 사람들을 늘 바라보며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걸 조금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언제부터인지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이제는 열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처럼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나를 보고 그저 한번쯤 미소 지어 줄 수 있으면 참 행복할 거 같다.

너를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우리 나무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너뿐 만이 아니라 원래 모든 사람들과 친구였던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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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종영 님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앙M&B]의 글을 제가 옮겨 본 것입니다. 이 책을 몇 년전 학교를 오가며 전철에서 읽었는데 나무가 건네는 사람들에 대한 편지글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우종영 님의 마음이 이 글속에 잘 묻어나는 듯 합니다.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래보며 올려봅니다. 어릴 적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이 참으로 인간중심적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종영님의 어울림의 방식을 느껴보기에 좋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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