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About Me

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Search

License


more detail
블로그의 모든 글과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상기의 Creative Commons License를 따르며 기타 인용한 내용이나 스크랩한 글들은 모두 해당 저자에게 저작권이 있음을 알립니다.

Profile

종이란 무엇인가?


종이란 무엇인가?
- 이 글은 2005.8.14일 한터울(http://www.hanteoul.wo.ro)에 제가 작성했던 글입니다.


진화...
진화란 말을 들으면 항상 다윈과 라마르크가 떠오르고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무생물에서 유기물이, 다시 그 유기물들이 특별한 과정을 거쳐 유기체로 그리고 생명으로의 시작. 화석을 가지고 보는 진화는 우리가 알고있는 아종으로의 분화와는 다르게 그 규모면에서도 대단히 큰 생명변화의 장을 스펙터클하게 보여준다. 이를 대진화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고 지역적, 지리적 장애등으로 인해 생식적 격리가 일어나 아종으로 분화되고 나중에는 다른 종으로까지 분화되는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의 우리가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소진화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처음 대학에서 진화론을 다시 배우면서 커다란 의문에 싸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진화와 소진화를 어떻게 진화라는 한 개념으로 생각하기에는 두 진화의 개념이 너무나 달라보였다. 간단히 대진화는 무척이나 대담한 진화의 경향을 보여주는데 반해 상대적으로 소진화는 너무나 작은 변화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진화는 인간이 몇 세대로도 측정할 수 없는 장대한 세월속에 진행된 것이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가 배우는 분류학을 기반으로 한 생물학에는 진화의 대상이 되는 최소단위이자 실체인 종의 개념 조차도 정확히 규정할 수 없다. 3학년 제대하고 진화론 수업을 들을 때 발표수업이 진행되었는데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 주제에 관련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질문에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다면 진화론의 역사며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도 앞으로 공부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화두로 잡았다. 그러나 수업시간에도 내가 찾은 자료이외에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없었고 딱히 다가올 만한 답을 구할 수 없었다. 그때 만난 책이 에드워드 윌슨의 '생명의 다양성'이었다. 이 책을 통해 학부 2년때 본 '개미세계여행'의 저자 윌슨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 책의 4장이었던가? 한 chapter에 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 대목이 나온다. 무척이나 진지하며 쉽게 설명된 부분이라 이 주제에 대해 논하는 사람에게는 늘 이 부분을 권해준다.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다는 언급을 못하지만 꼭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직접적인 언급은 이전에 개인 홈피인 어울림에 여러차례 올린 적이 있어 글을 링크시키고 여기에서는 철민이형처럼 내가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찾아갔는지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관심있는 사람만 이전에 쓴 글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화두로 잡고 나서는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학부때 관심이 많았던 식물분야를 비롯해 동물, 곤충에 이르기까지 수업시간에 배운 종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부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수업은 거의 도움이 안되었던 것 같다. 윌슨의 책과 전파과학사에서 나온 '진화론이 변하고 있다' 시중에 나온 일반생물학 책과 진화관련 책자의 해당 챕터들을 모두 보았지만 하나같이 일반적이 내용뿐이었다. 위의 두 책이 내 시각을 바뀌게 해 준 첫 촉매같은 역할을 해 주었고 웹사이트에서는 김우재씨의 '이중나선의 꿈'이란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진화론적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

생명의 다양성이란 책은 에른스트 마이어의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생물학적 종의 정의에 대해 진지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생물계의 실제 예를 들면서 마이어의 정의의 예외를 잘 설명해주고 있으며 전파과학사의 책은 다양한 현대 진화론의 모습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소개해 주고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진화론의 현대판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왜 우리가 배우는 진화가 진화론이 아닌 진화학이어야 하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기회가 좋았는지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할 기회는 자주 찾아왔다. 3학년 말이었던가? 한태준 교수님의 은사이시기도 하고 국내 생물학분야의 권위자이기도 하신 서울대 이인규교수님이 교내 세미나를 오셨다. 주제는 '종이란 무엇인가?' 당시 내겐 이보다 관심이 가는 세미나가 없었다. 수업이 있었지만 제끼고 세미나에 참석했다. 노트와 필기도구 그리고 질문 4가지를 머리 속에 간직하고 말이다. 이 질문들은 윌슨의 마이어의 생물학적 종의 정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슷하지만 나름대로 자연을 접하면서 느꼈던 내 궁금증이기도 했다. 첫째는 마이어의 생물학적 종의 정의 중에서 '자연상태에서'라는 전제조건에 대한 것이었다. 두번째는 '생식적 격리'라는 전제조건에 대해 무성생식 및 단위생식을 하는 종의 경우 종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세번째는 반종(半種)에 대한 질문이었다. 뿌리를 박고 사는 식물의 경우에 잘 나타나며 특히나 우리가 잘 아는 소나무류나 참나무류에서는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뚜렷히 구분되는 별개의 종이면서도 이들 사이에 교잡이 잘 일어나 중간 형질을 가지는 종이 자주 출현하는 것이다. 세번째 질문은 두번째 질문과도 상통하는 면이 많다. 나머지 하나는 품종에 대한 것이었다. 자연상태가 아닌 품종은 인간이 선택된 부분(열매, 꽃)을 특별히 발달시키거나 해 자연종으로 부터 전혀 새로운 특징을 가진 하나의 별종을 만들어 낸 것을 이른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종이더라도 우리가 말하는 자연상태에서도 간섭없이 자라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이를 하나의 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 저명인사에게서도 특별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지한 문제제기를 해주셨고 내 의견에 대해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주신 분이라 지금도 존경하고 감사드린다. 그런데 세미나가 끝날 때 즈음 교수님이 하나의 질문을 던지셨다. 해양생물학을 하시는 분이시니 이야기의 배경은 바닷가였다. 바닷가에서 한 사람이 걷고 있었는데 살아오면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종을 발견하고는 손에 올려놓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때 그 손 위의 생명체가 그 사람에게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이 세미나를 들으러 가면서 실험실형들을 다 끌고 갔는데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들었던 선배가 갑자기 손을 들고 대답했다. 물론 발표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도 머리 속에 떠오르던 생각이 있었다.
선배 왈..
'제게 이름을 지어주세요'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가져야 이 세상에 의미있는 존재가 되니까요.'
난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꼭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항상 똑같은 이야기를 던지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철민이형이나 홍근이형, 영주, 희은, 그리고 내 홈페이지를 찾았던 몇몇 사람들의 재미있는 의견도 들었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이 주제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끌만큼 추가적인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이 세미나를 듣기 전 성환 선배님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성환선배의 대답은 듣고 내가 박수를 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중국의 선사들이 하는 선문답과도 비슷하게 문득 깨닫는 게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에 대해 이야기를 죽 늘어놓자 선배는 자신이 생각하고 경험했던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나도 식물분류학을 배웠었던 박규하교수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첫 학부 수업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하신 이야기는 무척이나 단순하고 명료한 답을 내게 주었다.

첫수업이었다고 한다. 수업을 시작하시면서 대뜸 종이란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단순히 읽기만 하지말고 아직 정확히 개념이 안 잡혔더라도 잠시 읽기를 멈추고 자신이 생각하는 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히 생각해 보고 교수님의 당시 답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이야기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여러 의견이 나오고 아님 별 대답이 없었든가보다. 교수님이 천천히 말씀하시기를 '저명한 분류학자가 이것이 종이다한 것이 바로 종이다.'라고 하셨단다. 그 동안 많은 생각을 머리 속에만 담고 있었던 내게 그 이야기 속 한마디는 참 신선했다. 내겐 그 어떤 종의 정의보다도 명쾌한 답이었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박수를 치며 웃었었다. 그건 웃겨서 그런게 아니라 갑자기 머릿속이 탁 트이고 아~ 저거구나 하는 마음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로도 분류와 생태를 비롯해 생물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생명의 기본단위인 종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전공하는 나방의 특성상 이태수교수님과 실험실방 사람들과도 3-4차례 균학회 채집이나 버섯채집을 따라다녔는데 일정을 마치고 숙박을 할 때 교수님께 넌지시 다시 이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장황한 이야기는 없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시는 도중 이 문제가 나와 내가 넌지시 여쭈어 본 것이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종은 어떤 것입니까? 난 다시 자지러지고 말았다. 장황한 설명은 없었다.

교수님 왈 '내가 생각하기에 종의 개념은 철학적인 것 같다.' 교수님 앞이라 박수를 칠 수는 없었지만 내 생각도 이랬다. 물론 종의 개념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것에 따를 것인지 스스로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신의 분류군을 공부하면서 혹은 생물학의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종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언젠가는 말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분명 철학적인 문제다. 그만큼 생물학을 대하는 그리고 공부하는 이의 가치관과 주관은 그래서 어느정도 객관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생물은 다른 자연과학과 다르게 생명을 직접 다루는 유일한 학문이므로 생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없이는 위험한 결과가 생길 수 있다고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기에 그 대답은 그 어떤 대답보다도 멋지고 훌륭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실험실 생활을 하면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선배가 1년간 임교수님방에 석사과정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 형의 생명관은 나와는 무척이나 다른 것을 듣고 무척이나 놀랐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르지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장난반 진담반으로... '난 생물은 잘 몰라. 하지만 생물이 가진 유전자를 가지고 이리저리 조작하고 이를 수치화해 유용한 것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생명공학을 하는 입장에서 맞는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위험성이 많다. 생명에 대한 가치관이
결여될 여지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으며 생명관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이 주관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 객관적이 될 필요가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무척이나 길어졌는데 마지막으로 한가지 이야기를 하고 마치기로 하겠다. 대학원에 들어와 1년차 5월즈음 부산에서 한일공동학회가 열렸었는데 그 때 배교수님이 좌장으로 세미나를 진행하는 경우가 몇차례있어 난 그 옆에서 벨을 울려 발표자가 발표시간을 준수하는 걸 돕는 일을 했기 때문에 맨 앞 그러니까 발표자 바로 옆에서 여러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짧은 영어실력이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보면서 어느정도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발표는 고지마박사의 곤충을 이용한 데이터베이스 기술에 관련된 발표였는데 맨 마지막에 Please discover me, Please classify me이란 문구와 함께 곤충 한마리가 그려진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뻔 했다. 이 말을 해석해보면 '제발 나를 발견해주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분류해주세요.' 교내 세미나를 하러 오신 이인규박사님의 마지막 이야기와 똑같은 문구를 난 이 일본인발표자에게 2년 뒤에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이 표현의 이면에는 아마도 이런 생각이 있을 듯 하다. '세상에서 한 생명으로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이름이 붙어야 한다. 이름이 붙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어렵고 이용하기도 어렵다.'는..


고지마 박사의 세미나 발표 마지막 장 2003. 8월 부산 한일공동학회에서


종이란 무엇인가의 문제와 종에 대한 인식문제는 언제나 화제로 삼아도 토론이나 논쟁의 여지가 충분한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생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책에서 읽은 여러 종의 개념을 굳이 언급하지 않고도 서로의 의견을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0 개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