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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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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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테이블


존재의 테이블 - 나 희 덕

나에게는 '존재의 테이블' 이라고 남몰래 부름직한 앉은뱅이 탁자가 하나 있다. 노트 한권을 올려 놓으면 꽉차버리는 아주 작고 둥근 탁자인데, 나는 그걸 마루 한구석에 놓아두고 그 앞에 가 앉고는 한다.

모처럼 혼자 오롯하게 있는 날, 나는 무슨 의식이라도 준비하는 사람처럼 실내의 전등을 다 끄고 볕이 가장 잘 들어오는 창문 쪽을 향해 그 테이블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고는 두 손을 깨끗이 씻고 차 한잔을 그 옆에 내려놓고 앉는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니면 그저 멍하게 앉아 있노라면 마음의 사나운 기운도 어느정도 수그러드는 것이다. 어쩌면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그 순간을 위해 나머지 시간들을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살아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테이블을 인도 여행중 어느 토산품점에서 샀다. 직접 손으로 깎아서 만든 공예품들을 파는 집이었는데, 그 테이블을 보는 순간 나는 비슐라르의 존재의 테이블을 떠올렸다. 그는 추운 겨울날 불기 없는 방에서 겨울 코트를 포개입고 책을 읽곤 했는데,그 즐거운 독서와 몽상이 이루어지던 테이블을 '작업용 테이블' 이라고 하지않고 '존재의 테이블' 이라고 불렀다. 그 테이블에 앉는 순간 만큼은 자기 존재와 세계에 대해 충일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사실 그의 생애자체는 객관적인 기준에서는 그리 풍요롭거나 행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시골 우체국 임시직원에서 출발하여 결혼한 지 6년 만에 아내를 읽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면서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꾸준히 독학을 해나가서 마침내 교수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세상이 그를 받아주거나 기억해주지 않던 시절에 가난과 오로움을 견디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그 '존재의 테이블' 이었다.

대학자가 된 이후에도 그가 끊임없이 꿈꿀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테이블 위에서였다. 그는 책에서 얼마나 행복감을 느꼈던지, 매일 아침 책상 위에 쌓인 책 앞에서 일용할 배고픔을 달라고 기도를 올릴 정도였다고 한다. 또, 빠리의 아파트에서 밤늦게 책을 읽는데 옆 집에서 못 박는 소리가 들려온다든가 할 때, 그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모든 것, 모든 소리에 관해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시끄러운 망치소리를 들으면서도 " 저건 아카시아나무를 쪼고 있는 내 딱따구리란 말야" 하고 중얼거릴 만큼 그는 그 소리들을 '자연화' 시키는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감히 존재의 테이블을 갖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슐라르를 흉내내려는 치기에서가 아니다. 아마도 그가 이룬 업적이나 성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고통과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자리가 필요하다면 이렇게 자그마하고 나지막한 테이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것을 샀다. 다리는 접었다 폈다 조립이 가능하고, 둥근 판 위에는 작은 꽃문양을 새겨넣은 테이블이었다.

그 테이블을 사는 순간 어찌나 행복했던지 그것만으로도 인도에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행복감은 차차 후회로 변해갔다. 여행 초기에 커다란 짐 하나가 생긴 셈이니 여행 내내 나는 그것을 끌고 다니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었으니까. 존재의 자리를 낙타의 혹처럼 자기 등뒤에 짊어지고 다니는 내 모습이라니! 그처럼 우매한 충동과 집착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 테이블을 사지 않고도, 이미 집에 있는 테이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존재의 자리를 나는 왜 그 테이블이 아니면 안될 것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자기 존재의 자리를 잃어버린 채 생활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큰 집을 가졌다 해도 그 속에 정작 존재의 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보다는 덜 우매해지려는 욕심에서였을 것이다.

이런 씁쓸한 자부심이 그 테이블에는 깃들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존재의 테이블'을 인도에서 한국땅까지 끌고 와서 집안에 들여 놓은 후에도 그 앞에 앉을 시간을 그리 많이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도록 거기에 앉지 못할 떄도 있었다. 그럴 때는 바로 곁에 있는 그 테이블이 아주 멀리, 그것이 만들어진 인도보다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겨진 꽃문양 사이사이로 먼지가 끼어가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이 그 모습 같거니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토록 애착을 느꼈으면서도 어느 순간 잡동사니 속에 함부로 굴러다니며 삐걱거리게 된 그 테이블을 볼 때마다 나는 새삼 씁쓸해지고는 한다.

매일 학교에 갔다가 부랴부랴 돌아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챙겨서 재우고 나면 자정이 넘어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 앞에 앉기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행복하면 그 짧은 행복을 즐기느라, 고통스러우면 그 지루한 고통에 진절머리를 치느라 그 앞에 가 앉지 못했다. ' 존재의 테이블'을 장만한 뒤에도 존재의 자리는 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그 삐걱거리는 테이블을 잘 만져서 바로잡고 아주 공들여서 먼지를 닦는 날이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닦고 있는 것이 테이블이 아니라 실은 하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앉아 있는가를 가장 잘 비추어주는 거울. 그리고 힘든 일이 닥칠수록 그 테이블만큼 더 낮아지고 고요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거울.

그렇게 잘 닦고 나면 다시 그 앞에 앉을 엄두도 나는 것이다. 볕이 잘 드는 창문 쪽으로 그 테이블을 가져다놓고 두 손을 씻고.... 이렇게 누추한 생활에서 간신히 스스로를 건져올려 그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 드문 순간들에야 비로소 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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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희덕님의 '존재의 테이블'이라는 글이다. 몇 년 전 형하고 오랜만에 시내를 다녀오다가 내 얘기를 들은 형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쓴 글 중 존재의 테이블이란 글이 있다고 했다. 그때 난 하루동안 얼마나 자기 자신을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어 잠시라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내 말에 형이 들려준 이 이야기는 참 반갑게 들려왔다. 지금도 종종 하루 일과에 시달려서 살고 때로는 그러는 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는 날이 많지만 아무것도 하릴 것 없는 여유로운 하루 왠지 모르게 불안한 건 아마도 바쁜 삶의 후유증일 것이다.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주어져도 이젠 잘 활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저 하루종일 뒹구르고 놀아도 그렇게 자신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겐 비단 테이블이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나 자신이 되어보는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늘 나 이외의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에 대해서는 당연히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아마도 자신에 대해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은 나일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도 늘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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