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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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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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자연형하천


청계천사업이 한창일 때 난 대학원생으로 주로 수서생물을 이용한 도심하천의 수질 및 환경 모니터링 보고서를 주로 작성했었다. 또한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종종 가서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청계천 복원사업은 대단한 이슈였고 각종 매체에서도 물관련 다큐와 하천관련 다큐가 많이 했다. 그 중에서도 SBS 물은 살아있다는 단편이 아닌 지속적인 정규프로로 본격적으로 물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 당시 청계천의 상수원에 대한 다큐가 자주 했었다. 끊긴 청계천에 충분한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상수원의 물을 어떻게 해야하나는 가장 큰 이슈중에 하나였다. 청계천 주변에는 인왕산, 북악산이 자리잡고 있으니 여기서 흐르는 물과 지하수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수량이 부족할지도 모르나 지하수로 보강한다면 그나마 자연형하천에 그리 어긋나지 않은 하천의 복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최종결정된 것은 상류의 물을 이용하지 않고 지하철의 지하수와 한강으로부터 2~3급수에 해당하는 물을 역류해 흘려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량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수량유지장치를 설치했다. 그래서 장미든 가뭄이든 청계천의 물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 가끔 청계천을 가서 산책로를 걸어보면 좋은 산책로이긴 하지만 생물들에게도 그럴까 생각해보곤 한다. 물가의 수초사이가 아니면 수서곤충이 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계천은 하천의 연속성이 적용되지 않아 상류로부터 유기물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기물을 필요로 하는 수서곤충들에게는 먹이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 너무 깊다. 수서곤충은 깊은 물속보다는 얕은 물가의 모래속이나 돌밑에 서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청계천은 하류를 제외하고는 그런 곳이 부족하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이 상류로부터 수원을 공급받는 진정한 자연형하천이었다면 아마도 청계천주변에서 수서곤충의 우화모습이나 하루살이류의 군무도 시민들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청계천에서 관찰되는 곤충은 주로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제는 정착한 생물도 있어 서식지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겠지만 물속 사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최근 청계천에서는 있을수도 없는 어종을 가져다 놓고 청계천의 수질이 좋아좋다는 둥, 물고기가 돌아왔다는 둥 말했다가 큰 곤역을 겪은 것은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량도 유지하고 물도 2~3급수를 유지하는데 무슨 수질향상이고 회유란 말인지. 청계천의 하천바닥을 보면 알 수 있다. 바위나 돌, 자갈을 발견하기 어렵다. 수서곤충이 부족하니 상위포식자인 물고기도 먹이원이 부족할수밖에 없다. 유기물은 수생식물에서 어느정도 보강이 되겠지만 상류에서 유입이 안되니 이 역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청계천은 성공한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이명박대통령을 가장 크게 알린 것도 바로 이 청계천 사업이다. 그러나 4대강사업으로 이어진 그의 하천에 대한 생각은 크게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에서 보여주는 생각을 보면 경제적 효과, 문화적인 효과만 있을 뿐 생태적인 면은 거의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전부터 RSS로 하천관련 뉴스를 받아보고 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하천이 자연형하천으로 공사를 하고 있고 성공했다는 뉴스가 많았다. 그런데 그중 상당부분이 청계천을 모델로 삼고 있는 곳이 많았다. 청계천 사업당시 우려했던 문제였는데 상징적인 의미가 많았고 이슈를 받았던 사업이니만큼 상수원에 대한 문제는 신중히 그리고 제대로 처리했어야 했다. 대학원을 다닐때 이런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하천관련 연구를 하면 아마도 일이 줄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다 뜯고 다시 하면 그만이니 일거리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하천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간섭을 받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런 과정속에 엄청난 예산이 소모되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는 서울에서는 제법 큰 하천인 홍제천이 흐른다. 예전에는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물이 흘렀다. 아버지가 어릴 적에는 깨끗한 물이 흘렀다지만 70~80년대를 거치면서 오염되었다. 하수를 처리하기 위해 대규모의 콘크리트관을 지하에 묻는 공사를 하면서 하천은 완전히 갈아엎어졌고 그 뒤 홍제천은 건천이 되었다. 그만큼 상류로부터 흘러오는 물이 줄어든 이유도 있겠지만 하수공사시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상류수물도 하수관으로 흐르게 된 듯 하다. 몇해전 홍제천은 건천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자연형하천이란 타이틀을 걸고 말이다. 그러나 청계천과 달리 하천의 형태가 남아있고 상류로부터 물을 댈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초점은 하천주변의 자전거 산책로, 운동시설확충, 수변의 야생화공원조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정작 하천 본연의 기능에는 뒷전인 공사가 되었다. 홍제천과 같은 하천을 청계천처럼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하수와 한강물을 끌어와 흘리는 것이 하천이라는 청계천식 발상이 정말 여러 하천을 망치고 예산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많이 났었다.


서울홍제초등학교 근처 정비된 홍제천


홍제천을 따라 서울홍제초등학교 근처, 홍제천부근 공사현장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꽤 오래걸으면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나온다. 여기서 한강과 합류된다. 중간에 다른 하천과 만나 합류되지만 거의 끝부분에서 합류된다. 홍제천은 오랫동안 상류수와 생활하수가 함께 흘러 하천바닥에 썩은 토양과 오니가 많다. 그래서 가뭄이 들어 건천화되거나 물이 적어지면 지독한 냄새가 난다. 그런 문제 때문인지 홍제천의 일부 구간은 하천바닥이 콘크리트로 매몰시킨 곳이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보면서 하천 복원은 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이 나를 제외한 우리 식구들도 홍제천이 많이 좋아졌다고들 입을 모은다. 가끔 내 생각을 조금 표현해보지만 결국은 사람입장에서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니 할말을 잃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문제는 여론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책을 결정하는 이들의 올바른 생각이 중요하고 연구자들이 연구 못지 않게 제대로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방향제시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일단은 보여주어야 한다. 제대로된 하천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말이다. 특히나 지난 세월 오랫동안 수난을 겪었던 도심하천의 사례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더이상 청계천식의 무모한 하천을 자연형하천이란 말로 포장되는 하천공사는 더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싶다.

자연사박물관에 대한 생각


최근 강화는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로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지역에 대규모의 국립자연사박물관이 만들어지면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됨은 물론이고 지역이미지가 재고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장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는 처음으로 한국의 지리, 역사, 진화, 생태, 지구과학 등 다양한 테마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거나 이직이 발생될 것이고 연구표본이 모여져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 혹은 보관할 수 있는 여건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 생각된다.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국가의 이미지재고 및 한반도의 모든 것을 한 곳에서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홍보효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일보] 자연사박물관 유치 탄력 받는다 - 강화군 자체 진행서 市 차원 확대 방침
http://news.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7971

지난 2006년 국립생물자원관 추진기획단 당시 일했을 때 경험으로는 국내는 표본은 기관별로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전시를 위한 기반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생물자원관의 전시물도 자체적으로 조달한 것보다는 새로 제작하거나 외부 수주를 받아서 제작한 뒤 전시한 것이 대부분이다.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경우 소장품의 1%만이 전시되고 있다고 하며 전체 전시물을 보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다행히 소식을 들어보니 인천시를 중심으로 인천의 대학들이 평생모은 표본들을 기증한다고 하고 은암자연사박물관에서도 대량의 전시물을 모두 기증한다고 하니 초기 기반은 마련된 듯 하다.

외국의 자연사박물관의 예를 드는 것은 간혹 위험해질 수 있는데 그들의 장점을 따르다가 나중에 결과물을 보면 외국박물관의 특징이 짬뽕이 된 유사판이 되거나 축소판이 될 수 있다. 그만큼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선진 사례를 따라하게 되는데 한 국가의 면모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니만큼 정체성을 가진 제대로 곳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자연사박물관이 국내에 없다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틀리다. 이미 자연사박물관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박물관은 많기 때문이다. 단지 대부분이 사립이거나 학교에 포함되어 있거나 해서 국가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의 경우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연구보다는 전시와 교육에 치중하고 있다. 홈페이지를 들어가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국외의 자연사박물관중 역사가 깊고 잘 된 박물관이라면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영국자연사박물관을 예로 들고 싶다. 전시 및 교육을 물론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연구프로젝트들이 굉장히 다양하고 많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엄청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국내에서는 GBIF, KBIF로 데이터의 포맷을 통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는 맨 마지막에 해도 될 일이다. 이전글에서도 밝혔지만 이는 데이터를 상호교류하는 목적이지 DB구조의 통일화나 표준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가장 최적의 DB구조를 가지고 나중에 포맷만 변경시키면 그만이다.

영국 자연사박물관은 정말 매력적인 연구프로젝트들을 많이 제공하고 있는데 규모도 한 국가나 유럽에 치중되어 있지 않고 전세계의 종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세부적인 프로젝트들이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한번은 국내의 주요박물관의 홈페이지 링크를 모아서 하나씩 방문하면서 특징들을 파악해 본 적이 있다. 결과는 예상하겠지만 연구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심지어는 보유하고 있는 표본이 어떤 것이 있는지 검색하거나 표본의 현황파악도 안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전시와 교육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홈페이지가 거의 다였다. 자연사박물관이나 생물자원관 같이 공공기관 내지는 큰 규모이어야만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작은 박물관이 더 효과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일례로 해당 지역의 자연, 지리, 생태에 대한 연구는 당연히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연구가 가장 유리하지 않을까? 박물관이 그저 전시물을 구경하고 교육하는 곳이 아닌 연구도 하는 곳이라는 인식변화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전시와 교육만 강조되는 박물관이 될 것이다.

국내에서 오래된 자연사박물관 중에 하나인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생각보다 많은 표본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표본의 현황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표본을 정리하고 파악할 인력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그나마 산림청의 데이터베이스 작업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곳의 표본도 제대로 파악할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지역자체단체의 지원은 어떨까? 아마도 박물관에 대한 인식은 전시, 교육에 주로 머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건립도 중요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의 박물관들의 역할도 재고가 필요한 시점으로 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박물관이 연구기관의 역할을 하여 지역출신의 전문가들을 충분히 수용하고 지역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다면 인력의 효율적인 활용 뿐 아니라 박물관의 잊혀져 가는 연구기능을 가능성을 재고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국립생물자원관이 생기기전 추진기획단에서 일했던 2006년 한해동안 국내의 박물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생각해본 것들이다. 지금이야 원형을 갖추고 운영되고 있지만 당시 박물관의 텅텅빈 전시실을 돌아다니며 전시패널을 기획하고 표본이며 전시물을 대부분 구매해야 했던 나로서는 느끼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5년이 되어 간다. 여담이지만 종종 국립생물자원관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는데 잠시 이것저것 보다가 금새 나와버린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영국자연사박물관이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홈페이지는 한동안 머무르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고도 자주 찾게 된다. 이는 설명이 필요없이 직접 방문해보면 풀릴 것이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http://www.mnh.si.edu/

영국자연사박물관
http://www.nhm.ac.uk/

CHM형태의 ebook만들기 (도움말파일 제작)


흔히 도움말 파일은 확장자가 chm이거나 hlp파일인 경우가 많다.
매력적인 것은 문서형식으로 제작되면서도 별도의 뷰어가 필요없다는 점이다. 물론 모바일기기나 리눅스에서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지만 윈도우 기반에서는 뷰어같은 것이 없어도 바로 실행하여 열어볼 수 있어 배포하기엔 그만이다.

개인적으로는 hlp파일형식보다 chm파일형식이 맘에 들어 chm제작툴을 찾아본 적이 있다.
3가지 프로그램을 현재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이 Powerchm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위지윅방식으로 제작하는 형식은 아니고 미리 만들어진 html파일을 chm파일형식으로 변경할 수 있다. 예전에 만들어둔 html형식의 홈페이지를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chm파일로 제작이 가능하다. chm파일로 엔코딩뿐 아니라 디코딩도 제공하므로 디코딩해서 편집도 가능하다. 물론 내가 만든 것 이외에도 다른 이들이 만든 chm파일도 디코딩해서 수정후 다시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장점은 여러파일을 하나의 chm파일로 제작할 때 전체 용량이 줄어들고 배포가 쉬워진다는 점이다. 간단한 html제작이 가능하면 더욱 멋진 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고 이럴 여유가 없다면 워드프로세서(한글, 워드 등)으로 문서를 제작한 다음 웹페이지로 저장한 것 역시 변환이 가능하다.


두번째는 Helpmaker라는 프로그램이다.
사용법은 좀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무척 편리하다. 장점은 위지윅으로 직접 문서를 작성, 편집이 가능하다. 여러가지 옵션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언어도 한글을 완벽히 지원한다. 목차를 txt파일로 미리 작성한다음 불러오면 자동으로 tree형태의 구조로 문서의 틀을 잡아주어 편리하게 문서를 편집할 수 있다. 처음 익숙해지는 것이 좀 어려워서 그렇지 익숙해지면 메뉴얼제작이나 문서를 정리하는 용도로 매우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세번째는 CyberArticle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위지윅방식으로 작성, 편집이 가능할 뿐 아니라 웹페이지의 내용을 긁어와 스크랩하는 것도 가능하다. helpmaker의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내보내기 방식은 chm뿐만 아니라 exe방식도 지원해서 독립된 응용프로그램처럼 배포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아이콘변경이 가능하고 스킨도 기본적으로로 몇가지 제공한다. 배포시 저작권을 위해 디코딩을 방지하거나 오른쪽마우스클릭을 금지하는 옵션도 제공된다.  chm파일은 동일한 포맷이지만 powerchm으로 제작한 것이 압축률이 더 좋다. 이 프로그램으로 만든 것은 용량이 좀 더 커진다. exe형식으로 ebook을 만들면 단순히 실행파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기능상 더 좋아진다. 테스트해보았는데 본문까지도 검색해서 해당되는 페이지를 보여주고 형광펜으로 검색어를 표시해주어 무척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chm파일의 장점은 용량을 줄여주고 하나의 파일로 만들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트리형태로 체계적인 정리를 가능하게 해주고 약간의 검색기능이 제공된다는 점이다. 정적인 html파일의 단점을 조금은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메뉴얼을 목적으로 많이 활용되지만 얼마든지 다른 목적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세가지 프로그램이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 필요한 목적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면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한터울에 대한 추억









한터울은 대학 재학시 학과의 곤충 소모임이었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건 88년인가 89년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97년이었다. 술을 못마시는 내게는 뒷풀이를 강조하는 포스터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다가 2학년이 되어서는 동기가 회장이 되어 함께 다니며 나비와 식물을 익혔다. 솔남이라는 식물소모임도 있었는데 기회가 되면 솔남도 따라다녔다. 2학년을 마치고 군에 갔기 때문에 잠시 소모임활동도 접어야 했지만 군에서 워낙에 야외에 나가는 훈련이 많았기 때문에 도감을 찾지 못해도 자주 자연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종종 모르는 꽃이라도 발견하면 몰래 수첩사이에 끼워두었다가 휴가를 나오면 서점에서 도감을 뒤져보기도 했으니 나름 계속 소모임 활동을 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소모임활동이 인터넷상에서 시작된 것은 98년 후배에 의해 처음 홈페이지가 만들어져서 운영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보지 못하고 제대후 01학번 후배에게 권유하여 다음카페에 처음으로 카페를 만들어 운영했다. 이전에는 학교 카페에 게시판 하나만으로 운영되다가 독립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카페(한터울&솔남)가 있는데 운영은 되지 않고 있다.

제대후 복학하니 학과는 학부제로 통합되어버린데다가 여전히 소모임은 소수정예로만 활동하고 있었다. 처음엔 학교 적응도 잘 안되어 주말이면 언제나 산으로 혼자 다니다가 차츰 후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나비와 야생화를 만나러 함께 다니고 종종 길을 헤메고 도시락을 함께 먹다보니 자연스레 후배들과도 친해지고 학교생활도 적응해 나갔던 것 같다.

98년 8월 교학사의 나비도감을 구입하고부터는 채집을 다닐 땐 야생화도감과 함께 항상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며 익혔는데 왜 무거운 도감을 두권씩이나 가지고 다니냐고 종종 질문을 받기도 했었다. 대학 땐 사물함이 있었으면서도 항상 전공도서를 모두 가방에 싸들고 다녀 당시 동기들은 매일 MT가냐며 놀리기도 했다. 동기들과 다닐땐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서관을 오고갔지만 혼자 다닐때는 9층에 있던 열람실과 도서관을 항상 계단을 이용해 다녔다. 그러다 한번은 후배가 산에만 가면 혼자 이곳저곳 부지런히 다닌다며 산사나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어 처음 이메일을 만들때 적절한 아이디가 생각이 안나 후배가 붙여준 별명으로 아이디를 만들기도 했다. 채집을 나가면 특별히 제약을 두는 것이 없었다. 자유롭게 관찰하고 채집한 뒤 점심시간이 되면 모여서 도시락을 먹고 계곡에서 발담그고 쉬면서 이야기하다가 산을 내려오기 전에 모두 모여 채집한 것들을 모은 다음 선배들이 나비며 야생화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고 질문에 대답도 해주었다. 가끔 뒷풀이도 했지만 내가 데리고 다닐 때는 술을 못하는지라 술자리가 거의 없었다.

졸업후 대학원에 진학하고도 시간이 허락하면 후배들과 따로 채집을 다녔는데 그때도 늘 10명도 채 되지 않는 말그대로 소모임이었다. 실제 채집을 가는 회원은 얼마 없었지만 학술제만큼은 여러명이 도와주어서 큰 힘이 되기도 했다. 실제 학술제를 준비했던 건 2번이다. 98년, 제대한 2001년 나머지는 후배들이 준비하는 것을 지원해주었다. 제대후부터 대학원 졸업때까지 01학번 한터울 후배들과는 소중한 기억들이 많다. 함께 다니면서 내가 배우고 느낀 것들이 더 많았다. 혼자 다녔으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을 배울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면서 2005년 초에 직접 한터울 홈페이지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운영을 맡기고 홈페이지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소모임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몇몇 후배들의 이름정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알기도 했다. 그러던 것을 2010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운영을 중단하면서 아쉬움도 많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98년부터 참 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물에 대한 공부가 책이나 수업보다 야외에서 만난 수많은 생명들과의 인연으로부터 시작되고 이어져왔고 그 중심에 한터울이 있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처음 함께한 동기들과는 나의 군복무라는 공백기로 인해 소모임 활동을 함께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동기들과 함께한 98년 한 해의 식물과 곤충과의 만남은 내게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있다. 처음 동기들과 채집을 나가서도 난 박쥐같은 회원이었는데 정식회원되기를 거절하고 명예회원으로 해달라고 했던 거 같다. 그러면서도 채집때면 거의 빠짐없이 함께 했었다.

한터울 홈페이지를 관리하면서 10여년간 지켜봐온 소모임이지만 한편으로는 한해에 한 두명 가입할까 말까하는 회원수에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근히 이어져나가고 있음이 항상 고마웠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어져 나갈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네들 스스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진들은 홈페이지를 개편할때마다 스크린샷으로 기록한 한터울홈페이지의 기록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은 지금은 다 뭘 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