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 - 자연과 어울어지기, 그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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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공부하는 人입니다. 생물의 죽살이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해온 문화와 이야기도 함께 알아가고 싶습니다.

I am studying nature. I want to know not only the life history of living things, but also the culture and stories they and humans have shared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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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테이블


존재의 테이블 - 나 희 덕

나에게는 '존재의 테이블' 이라고 남몰래 부름직한 앉은뱅이 탁자가 하나 있다. 노트 한권을 올려 놓으면 꽉차버리는 아주 작고 둥근 탁자인데, 나는 그걸 마루 한구석에 놓아두고 그 앞에 가 앉고는 한다.

모처럼 혼자 오롯하게 있는 날, 나는 무슨 의식이라도 준비하는 사람처럼 실내의 전등을 다 끄고 볕이 가장 잘 들어오는 창문 쪽을 향해 그 테이블을 가져다 놓는다. 그러고는 두 손을 깨끗이 씻고 차 한잔을 그 옆에 내려놓고 앉는다. 그렇게 테이블 위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아니면 그저 멍하게 앉아 있노라면 마음의 사나운 기운도 어느정도 수그러드는 것이다. 어쩌면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그 순간을 위해 나머지 시간들을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살아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 테이블을 인도 여행중 어느 토산품점에서 샀다. 직접 손으로 깎아서 만든 공예품들을 파는 집이었는데, 그 테이블을 보는 순간 나는 비슐라르의 존재의 테이블을 떠올렸다. 그는 추운 겨울날 불기 없는 방에서 겨울 코트를 포개입고 책을 읽곤 했는데,그 즐거운 독서와 몽상이 이루어지던 테이블을 '작업용 테이블' 이라고 하지않고 '존재의 테이블' 이라고 불렀다. 그 테이블에 앉는 순간 만큼은 자기 존재와 세계에 대해 충일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사실 그의 생애자체는 객관적인 기준에서는 그리 풍요롭거나 행복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시골 우체국 임시직원에서 출발하여 결혼한 지 6년 만에 아내를 읽고 혼자서 어린 딸을 키우면서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꾸준히 독학을 해나가서 마침내 교수자격 시험에 합격하고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세상이 그를 받아주거나 기억해주지 않던 시절에 가난과 오로움을 견디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그 '존재의 테이블' 이었다.

대학자가 된 이후에도 그가 끊임없이 꿈꿀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테이블 위에서였다. 그는 책에서 얼마나 행복감을 느꼈던지, 매일 아침 책상 위에 쌓인 책 앞에서 일용할 배고픔을 달라고 기도를 올릴 정도였다고 한다. 또, 빠리의 아파트에서 밤늦게 책을 읽는데 옆 집에서 못 박는 소리가 들려온다든가 할 때, 그는 자신을 귀찮게 하는 모든 것, 모든 소리에 관해 평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시끄러운 망치소리를 들으면서도 " 저건 아카시아나무를 쪼고 있는 내 딱따구리란 말야" 하고 중얼거릴 만큼 그는 그 소리들을 '자연화' 시키는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감히 존재의 테이블을 갖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슐라르를 흉내내려는 치기에서가 아니다. 아마도 그가 이룬 업적이나 성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고통과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자리가 필요하다면 이렇게 자그마하고 나지막한 테이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것을 샀다. 다리는 접었다 폈다 조립이 가능하고, 둥근 판 위에는 작은 꽃문양을 새겨넣은 테이블이었다.

그 테이블을 사는 순간 어찌나 행복했던지 그것만으로도 인도에 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행복감은 차차 후회로 변해갔다. 여행 초기에 커다란 짐 하나가 생긴 셈이니 여행 내내 나는 그것을 끌고 다니느라 여간 고생을 한 게 아니었으니까. 존재의 자리를 낙타의 혹처럼 자기 등뒤에 짊어지고 다니는 내 모습이라니! 그처럼 우매한 충동과 집착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그 테이블을 사지 않고도, 이미 집에 있는 테이블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존재의 자리를 나는 왜 그 테이블이 아니면 안될 것처럼 생각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오랫동안 자기 존재의 자리를 잃어버린 채 생활에 휘둘려 살아가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큰 집을 가졌다 해도 그 속에 정작 존재의 자리를 갖지 못한 사람보다는 덜 우매해지려는 욕심에서였을 것이다.

이런 씁쓸한 자부심이 그 테이블에는 깃들여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존재의 테이블'을 인도에서 한국땅까지 끌고 와서 집안에 들여 놓은 후에도 그 앞에 앉을 시간을 그리 많이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도록 거기에 앉지 못할 떄도 있었다. 그럴 때는 바로 곁에 있는 그 테이블이 아주 멀리, 그것이 만들어진 인도보다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겨진 꽃문양 사이사이로 먼지가 끼어가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이 그 모습 같거니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토록 애착을 느꼈으면서도 어느 순간 잡동사니 속에 함부로 굴러다니며 삐걱거리게 된 그 테이블을 볼 때마다 나는 새삼 씁쓸해지고는 한다.

매일 학교에 갔다가 부랴부랴 돌아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챙겨서 재우고 나면 자정이 넘어버리는 일상 속에서 그 앞에 앉기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행복하면 그 짧은 행복을 즐기느라, 고통스러우면 그 지루한 고통에 진절머리를 치느라 그 앞에 가 앉지 못했다. ' 존재의 테이블'을 장만한 뒤에도 존재의 자리는 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그 삐걱거리는 테이블을 잘 만져서 바로잡고 아주 공들여서 먼지를 닦는 날이 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닦고 있는 것이 테이블이 아니라 실은 하나의 거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앉아 있는가를 가장 잘 비추어주는 거울. 그리고 힘든 일이 닥칠수록 그 테이블만큼 더 낮아지고 고요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거울.

그렇게 잘 닦고 나면 다시 그 앞에 앉을 엄두도 나는 것이다. 볕이 잘 드는 창문 쪽으로 그 테이블을 가져다놓고 두 손을 씻고.... 이렇게 누추한 생활에서 간신히 스스로를 건져올려 그 앞에 데려다놓는다. 그 드문 순간들에야 비로소 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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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희덕님의 '존재의 테이블'이라는 글이다. 몇 년 전 형하고 오랜만에 시내를 다녀오다가 내 얘기를 들은 형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쓴 글 중 존재의 테이블이란 글이 있다고 했다. 그때 난 하루동안 얼마나 자기 자신을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러고 싶어 잠시라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내 말에 형이 들려준 이 이야기는 참 반갑게 들려왔다. 지금도 종종 하루 일과에 시달려서 살고 때로는 그러는 게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는 날이 많지만 아무것도 하릴 것 없는 여유로운 하루 왠지 모르게 불안한 건 아마도 바쁜 삶의 후유증일 것이다.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주어져도 이젠 잘 활용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저 하루종일 뒹구르고 놀아도 그렇게 자신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을 느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겐 비단 테이블이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나 자신이 되어보는 그런 시간들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늘 나 이외의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나에 대해서는 당연히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아마도 자신에 대해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은 나일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알면서도 늘 그냥 지나쳐버리는 일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어울림홈페이지







7년 정도 어울림홈페이지를 운영했을 때 변해간 모습입니다. 점점 홈페이지가 깔끔해지고 자료도 쌓여갔죠. 그만큼 추억도 많이 쌓인 곳이었죠.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소중한 인연으로 만난 분들도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시작하게 되겠죠?

등산과 입산


등산과 입산

이원규 님의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 지리산 편지 – 중에서…

산 그늘에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기에 참 좋은 날입니다. 죽기에도 좋고 누군가 태어나기에도 좋은 봄날입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기 바랍니다. 다만 등산(登山)은 말고 입산(入山)하러 오시길.

등산은 인간의 정복용과 교만의 길이지만 입산은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경쟁하듯이 지리산 종주를 하다 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앞 사람의 발뒤꿈치뿐이지요. 하지만 입산의 마음으로 계곡의 바위들을 타고 흔적도 없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몸 속에 이미 지리산이 들어와 있습니다. 유정 무정의 뭇 생명들이 곧 나의 거울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지요.

누구나 정복해야 할 것은 마음 속 욕망의 화산(火山)이지 몸 밖의 산이 아닙니다.

산에 들어갈 때엔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흥얼흥얼 천천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사람도 살고 산짐승도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결에 나의 냄새와 노래를 실어보내면 멧돼지나 반달곰이나 독사들도 알아서 길을 내주지요.

처음엔 향기로운 풀꽃을 따라 갔다가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계곡 물을 따라 내려오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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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이원규님의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좋은생각]라는 책의 한 부분을 옮겨 본 것입니다. 등산과 입산이라… 가끔은 등산도 가끔은 입산도 좋을 것 같네요. 하지만 입산이 더 좋습니다. 누군가와 같이 산을 오르는 것이 더 좋지만 때론 혼자서 산을 오르며 천천히 오르다 쉬고 싶을 때 언제라도 걸터 앉아 쉬는 그런 조용한 산책도 하고 싶습니다.

꿩의바람꽃 이야기




2003년 이른 봄. 화야산 계곡에서 이 꿩의바람꽃을 처음 보았다. 이 글과 사진은 그 때 찍고 적었던 글이다. 바람꽃. 보면 볼 수록 아름다운 꽃인 것 같다. 소박하고 청초한 외모에 비해 이름은 바람꽃이라니...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숲해설가협회의 류희창선생님 칼럼을 봤는데 그 중 `꿩의바람꽃의 의미'란 글을 본 적이 있다. 이름만으로는 전혀 의미를 생각하기 어려운 참 추상적인 이름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글이 사실이든 아니든 너무 재밌고 의미도 가슴에 와 닿아 여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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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면 들꽃들이 화사하다.
어찌 이리도 오묘한 색을 가지고 있을까...현호색
겨울솜옷을 아직도 입고 있는...노루귀
꿩이 바람 필 무렵 피어나는..꿩의바람꽃..

꽃의 이름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많은 정보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상님들의 지혜를 담고 있다.
절로 탄성이 나오는 들꽃이름의 의미...

어찌 이리도 이름을 잘 지었을까?

꿩이 바람 피울 때 피는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은 이름에서 주는 미소 외에
우리 조상들 삶이 녹아 들어 있다.

꿩이 바람피우는 것과 사람의 생활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예전 닭알은 농가에서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계란말이, 계란국, 계란찜, 계란부침....
날계란 하나로 목을 트이던 그 계란..

그렇지만 봄철 계란은 먹을 수 없다.
먹어서는 안된다.
너무 아까워서...
병아리를 깨어 나오게 해야 되기 때문이다.
봄철 계란을 먹어버리면 여름철 삼계탕은 없는 것이다.

이때 닭알 대신 다른 알을 구해야 하는데..
바로 꿩알이 대신할 수 있었다.
들을 가다...
꿩의바람꽃이 피어나면..
아하...지금쯤 꿩들이 바람을 피우겠구나..
보름정도 지나면 꿩들이 알을 낳겠구나..

꿩은 일부 다처제.
꿩의바람꽃이 피어날 때 쯤이면
숫꿩들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힘겨루기 싸움을 한다.
양지바른 너른공터에 암컷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컷들이 며느리발톱으로 서로를 공격하며 싸우는 모습은 장관이다..

싸움에서 이긴 수컷은 암컷을 모두 차지하고
짝짓기를 한다음
알을 낳아 꿩의 병아리(꺼병이)를 깨어나오게 한다.
바로 꿩의바람꽃이 피어날 때 그들의 행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꿩의 집을 찾을 때는 어떻게 할까?
숫꿩은 봄철 암꿩이 알품기에 들어가면
천적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둥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꿩꿩대며 운다.
그런데 꿩의 소리가 나는 정반대편 그 높이에 가면
암꿩들이 알을 품는 둥지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이치를 알고.
꿩이 소리내는 반대편에가서
꿩알을 찾아 내었다.
꿩은 한마리가 20개에서 30개의 알을 낳는다.
이는 농가에서 계란을 대신할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또한 꿩알을 봄철에 꺼내 먹어야만 되는 이유중 하나는..
꿩의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농사 망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꿩의바람꽃이 단순한 들꽃이 아니라
우리네 삶에 시기를 알려주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원이었던 것이다..

청계산에 꿩의바람꽃이 아주 많이 피었다.
그 모습 또한 너무 예쁘고 청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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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식물도감(이창복 저)를 보면 Anemone란 속명은 지중해산 아네모네의 희랍명으로 `바람의 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의 유래의 정확성을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이런 이야기는 많이 만들어질 수록 좋다는 생각이다.

'바람'의 의미가 여러가지이듯 이야기도 많을 수록 좋은 게 아닐까? 산들거리는 바람의 의미는 야생화의 이미지에 딱 맞고 바람 피우는 시기와 연관짓는 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더욱 좋다. 벌써 식물을 배우기 시작한지는 꽤 되어가는데 종종 듣거나 알게 되는 식물의 정겨운 이야기들은 어쩜 가까우면서도 먼 생명들을 더욱 더 친근하고 포근하게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새로운 얘기라도 듣는 날이면 그날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듯 하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친구야, 부탁이 하나 있어.

- 우종영 님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에서...

안녕, 사람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매일 아침 거리에서, 집 뜰에서 얼굴을 마주 대하면서도 서로 안부 인사조차 나눌 시간이 없으니까. 나랑 눈 맞출 시간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그렇게 바쁜 거니?

예전에는 길을 가다가도 내 그늘에 들어와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이젠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끊임없이 말을 걸고 내 나름의 신호를 보내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은 언제나 해바라기의 짝사랑으로 끝나곤 한단다. 외면 당한 마음은 씁쓸하지만 언제고 다시 내게 눈을 돌려주길 말없이 기다릴 밖에.

얼마 전 친구들과 내가 느낀 이런 아쉬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마침 그 때 너희 사람들이 만들어 낸 나무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 그래도 우릴 잊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에 처음엔 무척 반가웠단다. 너도 잘 알거야.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던가.

나무와 한 소년이 있었지. 소년은 매일 나무에게로 와 나무가 떨군 잎들로 왕관을 만들어 쓰기도 하고, 나무 기둥에 올라가 그네도 타고, 또 열매를 따먹기도 했어. 놀다 지치면 나무 그늘에 자기도 하면서 말이야. 소년은 나무를 사랑했고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다더군. 그 사이 소년은 나이를 먹어갔고 나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지.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돈이 필요하다며 나무를 찾아왔고 나무는 고민 끝에 자기 가지에 달린 사과들을 모두 소년에게 주었단다. 사과들을 등에 한 짐 지고 떠나는 소년을 보며, 그래도 나무는 행복해 했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무는 떠나 있던 소년이 다시 돌아와 이번엔 집이 필요하다고 했어. 고민하던 나무는 자신이 가진 나뭇가지들을 모두 내어 주고 행복해 했지.

그 뒤 늘그막에 다시 나무를 찾아온 소년은 나무 기둥까지 베어 낸 뒤 배를 만들어 떠나 버렸지. 나무는 그래도 자신에게 무언가 줄 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행복을 느꼈고.

마지막 장면이던가. 편히 쉴 곳을 찾아 돌아온 소년에게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이미 잘려 나간 몸뚱아리를 곧게 펴 앉을 곳을 마련했단다. 소년은 나무가 내어 준 나무 밑둥에 앉아 지친 몸을 쉬었지. 이미 늙어 버린 소년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무는 행복해 했단다.....

그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그렇게 끝이 났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구나. 어느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것을 송두리째 내 놓으면서도 그것으로 행복해 할 수 있는 태도를 본받고 싶다고 했다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 켠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지더구나. 과연 그 나무가 정말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말이야.

나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고, 울고 웃는 감정이 있으며, 누군가 톱이라도 대면 아파서 비명을 지른다는 걸 너도 잘 알 거야. 그렇게 살아 숨쉬는 나무가 누군가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가진 것을 송두리째 내어주고, 마지막으로 밑둥이 되면서까지 과연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무가 주는 걸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뿌리만 남겨 둔 채 베어버리는 소년은 행복했을지 몰라. 그러나 소년은 그렇게 모든 걸 내어 준 나무의 마음을 절대 알지 못했을 거야. 그렇게 다른 곳만 바라보는 소년을 대하며 나무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나는 그 나무가 흘린 보이지 않는 눈물이 느껴진다. 결국 "나무가 행복했다"고 말하는 건 사람의 눈,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잘못된 편견이지 않을까 싶어.

하지만 사실 내게도 사람으로 인해 행복했던 시절은 있었지. 사람들 입에서 나무 한그루 한그루가 애틋한 전설로 회자되던 시절이었지.

은행나무만 해도 그래. 이 땅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중 대부분이 바로 은행나무와 관련된 것이지. 양평의 용문사라는 절에 있는 천 년된 은행나무는 그 한 그루에 무수한 전설을 담고서 사람들로부터 애정과 관심을 받아왔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그 은행나무는 천년이라는 세월동안 나라의 여러 가지 변고가 있을 때마다 신비한 일을 행했다고 하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그 은행나무는 살아 숨쉬는 시간들이 크고 작은 행복들로 채워졌을거야.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이렇게 사람 마음이 담긴 아름다운 전설들을 갖고 있는 나무들이 참 많았던 것 같아. 비단 큰 나무뿐만 아니라 작고 하찮은 풀 한 포기까지 어느 하나 사연 없는 게 없단다.

시어머니 심술 덕에 굶어 죽은 며느리가 밥풀 물고 있는 모양새로 다시 태어난다는 '며느리밥풀'부터 시작해서,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낸 뒤 바닷가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죽어 붉은 꽃으로 피어났다는 '백일홍', 추운 겨울 큰 스님을 기다리다 얼어죽은 동자승이 다시 태어났다는 '동자꽃'까지 그 이야기도 참 다양하지.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그 하나 하나엔 맑고 소박한 사람들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단다.

하나같이 애절하면서도 애정이 가득 베어있는 전설들을 보면 옛날에는 너희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과 관심이 없었더라면 아주 작고 볼품없는 꽃에 이르기까지 그런 전설들이 생겨 날 리 없겠지.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그런 전설들이 생겨나지 않는 것 같아.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 나무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뜻일 거야.

내가 다른 얘기 하나 더 해줄까? 유리나가빈이란 사람이 쓴 [겨울 떡갈나무]란 소설 이야기야.

어떤 한 마을에 안나 바실리예브라는 선생님이 있었어. 부임한 지 이 년밖에 안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송이 자자했지. 그러나 그녀에겐 골치덩어리 학생이 한 명 있었어. 지각 단골생 서브스킨이라는 아이. 참다 못한 그녀는 어느 날 서브스킨을 교무실로 불러 지각하는 이유를 물었어. 그러자 서브스킨이 대답했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매일 1시간 전에 집에서 나오거든요." 그녀는 서브스킨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서브스킨과 등교 길을 함께 나섰어.

서브스킨은 학교 뒷문에서 시작되는 오솔길로 선생님을 안내했단다. 그 오솔길은 주위가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숲 속이었어. 사람들 손길이 닿지 않는 그 곳은 새들이 재잘거리면서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들판엔 토끼와 사슴 발자국이 찍혀 있었지.

서브스킨과 함께 그 모든 것을 바라보던 안나 선생님은 숲의 고요 속에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한 놀라움으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단다.

오솔길은 산사나무 주위를 휘돌며 이어져 있었고, 숲은 거기서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지. 그리고 그 한가운데 커다란 떡갈나무가 새하얀 옷을 입고 우뚝 서 있었어. 떡갈나무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작은 거울들로 반짝였는데 그 맑은 거울 하나하나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걸 보고 그녀는 나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단다.

그런 그녀에게 서브스킨은 나무 밑둥을 파 고슴도치를 살짝 보여주기도 하고, 또 작은 굴 속에서 잠자는 개구리, 투구벌레, 도마뱀, 무당벌레들을 보여 주기도 했어. 그러는 동안 학교에서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버렸지.

그제서야 그녀는 서브스킨에게 말했어.

"멋진 산책을 시켜 줘서 고맙구나. 앞으로 계속 이 길을 통해 학교를 다녀도 좋아."

서브스킨은 그 길을 걸어 다니면서 자연의 신비하고 경이로운 모든 들을 접했을 거야.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무에 대한 사랑,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배웠을 거고, 아마도 안나 선생님은 그것의 소중함이 학교 수업만큼이나 소중하다고 생각했기에 서브스킨에게 계속 그 길로 걸어도 좋다고 했겠지.

그런데 있잖아.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갑자기 지금 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세상이 두려워졌어. 우리들에 관한 전설이 사라지는 이 세상이 말이야.

자연스럽게 나무와 멀어진 사람들, 한가롭게 나무와의 추억을 만들 시간이 어디 있냐고 따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갈수록 각박하고 황량해지는 이유를 발견하는 건 나뿐일까?

네게도 서브스킨처럼 나무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거야. 그리고 그때의 추억들은 어느 순간 네가 각박해지고 메말라가는 것을 막아주는 버팀목이 될 테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전설들이 사라지는 지금의 현실이 참 안타깝고 슬프다.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에 이름없는 풀 한 포기, 나무 하나에도 새로운 전설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편지의 마지막을 부탁으로 끝내는 게 미안하지만 너는 그래도 나의 벗이라고 생각하기에 염치 불구하고 얘기한다. 너도 알 거야. 서울 비원 앞 플라타너스에 아이들 이름이 적힌 명패가 하나씩 달려 있다는 걸 말야. 적어도 그 나무들은 그 명패의 주인공에게만큼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살아가는 동안 그 나무와, 그 나무에게 자신의 이름을 준 아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둘만이 공유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가겠지. 서로를 친구라고 여기며 말이야.

나는 전설이라는 게 꼭 크고 거창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만 우리가 사람들을 늘 바라보며 함께 하고 싶어한다는 걸 조금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언제부터인지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이제는 열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처럼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나를 보고 그저 한번쯤 미소 지어 줄 수 있으면 참 행복할 거 같다.

너를 통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우리 나무의 마음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너뿐 만이 아니라 원래 모든 사람들과 친구였던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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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종영 님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중앙M&B]의 글을 제가 옮겨 본 것입니다. 이 책을 몇 년전 학교를 오가며 전철에서 읽었는데 나무가 건네는 사람들에 대한 편지글에 감탄한 기억이 납니다. 나무를 사랑하는 우종영 님의 마음이 이 글속에 잘 묻어나는 듯 합니다.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래보며 올려봅니다. 어릴 적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들이 참으로 인간중심적일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종영님의 어울림의 방식을 느껴보기에 좋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